아들을 꼭 낳아야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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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딸을 여섯 낳아 하나 잃고 일남 오녀다
할머니께서 딸을 일곱 낳으셔서 고모가 일곱 분 이었고~
윗 대 부터 딸이 질은 집이라 소문난 집이었다
셋째 딸 그러니까 세번 째가 남동생 하나 끼이고 그 밑에 여동생 부터는 엄마가 딸 낳는 걸 기억한다
엄마가 산기가 있는 날은 집안이 온통 긴장 -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남동생 밑으로 딸을 넷 더 낳았으니 그 때 마다 우리집은 초상집이었다
산바라지는 커녕 구박과 핍박과 설움에 엄마는 갓난쟁이를 돌보기는 커녕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밀쳐 놓았다
세번 째 여동생은 한 칠 된 애를 엎어 놓고 하루 종일 나갔다가 저녁에 와서 들어보니 죽지 않고 살아있어 키웠단다
그 말은 영원히 비밀로 했어야 되는 걸 동생이 그 말을 듣고
살면서 힘들 때 마다 죽어라고 밀쳐 놓아서 팔자가 힘들다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드나보다
나는 엄마가 딸을 낳을 때 마다 어린 가슴을 싸안고 울었다
인생에서 가장 인력으로 안되는 것이 아들 낳는 건가 보다
'나는 시집가면 절대로 딸을 낳지 않으리라'
다섯 번 째 동생이 임신 8개월 되었을 때 아버지랑 엄마랑 싸우다가 아버지가 던진 몽둥이던가 뭔가에
배를 맞아 엄마가 사산을 했다
누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 했던고!
어느 무덥던 여름 날 밤 새파랗게 죽어 나온 아이는 우리 아버지가 몽매에도 그리던 고추였다
그 고추를 만지며 오열하는 내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도 통탄했다
하늘이시여 !!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며 자리보존하고 누운 내 아버지 -
인생은 왜 이다지 고달픈고
고등학고 일학년 봄에 여섯번 째 여동생이 또 나왔단다
학교에서 하루종일 공부도 못하고 울고 또 울었다
엄마아버지의 절망이 나는 더 아팠다
그 천덕꾸러기 동생들을 전부 작은 가슴으로 싸안고 있는 힘껏 키웠다
나는 시집오기 전에 동생들한테 부모보다 더한 하늘 같은 언니였다
스물 넷에 결혼을 해서 내가 아이를 가졌더라
나는 죽음보다 간절했다
꼭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건 절대적이었다
잠들지 않은 동안은 아들을 갈망하며 시골집 신혼방 벽에다가 남자아이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리
임신 6개월이 되니 임신 중독으로 혈압이 200 넘으며 당뇨 부종으로 밤잠을 못자며 고통속에서
열달 째 산기가 있어 삼성 병원으로 갔더니 산모든 애기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했다
혈압이 240으로 혈압 강하제 주사를 맞으면 애기 맥박이 90으로 떨어지고
천정이 뿌옇게 흐린속에서 산소 호흡기 쓰고 비몽 사몽 난산이었다
가물가물한 의식속에서도 힘 주다가 멈추면 아기 머리 짱구 될까봐 계속 힘을 주니
간호사가 아기 벌써 나왔다고 힘주지 말라했다
그 순간 부터 희미한 의식으로 "뭡니꺼?"를 반복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속에 가물가물한 의식을 붙잡고 나는 계속 외쳤다 "뭡니꺼?"를~
한참 있으니 간호사가 아기발에 발걸이를 채워서 안고 들어와 나를 보고 나무랬다
"아줌마,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서 뭔가가 뭐가 그래 중요합니꺼? 아들입니더" 했다
그 순간, 혈압이 뚝 뚝 떨어지는지 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느님, 천지신령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만약 '딸입니더' 했으면 나는 쇼크로 죽었을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오후 4시 43분 - 나는 그 때 부터 두 평생 산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고마워
나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영원히 내가 이 세상 떠나 저 세상에 가서도 아들아 고마워
소원 성취했다
두 번 째도 아들이기를 바랐다
처녀때 나 보다 두살 위 외사촌 언니가 결혼해서 형편이 어려워
너댓살 된 아들 둘을 데리고 종종 우리집에 와서 이것저것 얻어갔다
그 언니의 팍팍한 결혼 생활 속에서도 아들 둘인 것이 너무 부러웠다
소원대로 아들을 둘 낳았다
주위 사람들이 나더러 늙어서 딸이 없어 어쩔거냐고~
쓸데없는 별 말씀을 -
지겹게 딸이라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또 아들 낳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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