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의외로 한반도 문화재를 꽤 체계적으로 관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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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조선총독부와 관련해서 너무 이상한 글을 봐서 한번 글 써봄. 큰 관련은 없지만 사람들이 정확히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목만 보고 거품 물고 달려들 사람들 있을 거 충분히 알고 있지만,

ㅈ문가인 내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쓴 글을 바탕으로 했고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내용 아니니깐 한번 읽어보길 보래.

 

 

 

I. 일제시대에 문화재 관리?

 

일제시대에 문화재를 파괴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좀 잘못된 인식이야.

 

일제는 조선의 상징적인 곳(경복궁이라던지..)이나 도시 계획에 방해되는 문화재들은 적극적으로 훼손한 반면, 그 외에는 꽤 체계적으로 관리했어.

 

재미있는 예로 일제가 콘크리트 떡칠해 놓은 거로 유명한 미륵사지 서탑이랑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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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20세기 초에 일제가 건드리기 전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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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봐도 정말 아슬아슬하지 않아?

 

1912년 보고서에는 당시에 이미 천장에 큰 구멍이 생겼고, 거기로 토사물이 쏟아져 내부가 파괴될 수 있다고 나와있고, 그래서 콘크리트로 보수공사를 한거야.

콘크리트 때문에 습기가 차는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이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그게 최선이었어.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는 콘크리트 자체가 신소재였거든.

 

즉, 일제가 콘크리트를 부은 건 우리의 문화재를 흉물로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당시의 기술로 나름 복원해 놓은 거라고 볼 수 있고, 

이건 심지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도 "당시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등장한 시멘트의 효능을 믿고 사용했다"고 평가하고 있어.

 

(여담으로 미륵사지 석탑은 오히려 한국 정부가 90년대에 복원한 동탑이야말로 역사상 최악의 복원으로 거론되고 있어. 문화재 관리란 이토록 어려운 것..)

 

자 그럼 일제는 조선을 위해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한 걸까? 일본 애들이 사실 착해서? 식민지 수혜?

 

물론 그렇지 않아.. ㅋㅋ

 

일제는 조선이 앞으로 영원히 자신들의 식민지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사실 식민지도 아니고 조선은 대만과 함께 일본 본토의 행정구역이었어.

동남아시아나 만주와는 엄연히 상황이 달랐지.

 

즉, 조선의 문화재는 곧 일본의 문화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것이기에 당연히 관리한 거야.

하지만 내선일체가 사실이 아니였듯, 문화재의 격에 차이를 두었어. 일본의 문화재는 국보로 다뤄진 반면 조선의 문화재는 보물로 다루었지.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바로 근대화된 일본이 조선의 빛바랜 영광을 되찾아줄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적인 목적도 있었어.

 

 

 

II. 유적과 유물

 

자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 일제시대에 도자기, 고서, 고미술품들이 많이 유출되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럼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제는 한일합병 이후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조사/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일본 학자 조금과 총독부 관료, 정치인들이 주도했어.

 

문화재 그 자체를 위한 관리보다는 도시계획이나 통치에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정책적인 필요에 의한 문화재 관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산(動産)인 유물보다는 부동산(不動産)인 유적이 압도적으로 많았어. 애초에 조사 책임자도 건축 전공자였지.

 

위에서 일제시대 문화재 복원의 예시로 나온 미륵사지 석탑이나 석굴암이 둘 다 유물이 아닌 유적지인 건 우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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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99%가 유적, 부동산(不動産) 문화재임을 알 수 있어.

 

그리고 이건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물, 동산(動産)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던 시기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엄연히 조선총독부의 선택이라고 봐야 해.

 

+ 아까 말했지만 당시 조선은 곧 일본이었어. 부동산 유적들은 당연히 조선 땅에서 직접 관리를 해야 했지만, 유물은 일본으로 가던 말던 크게 상관없었지.

++ 사찰이나 신사의 문화재들은 「사찰령」, 「신사 사원 규칙」 등을 통해 따로 관리되고 있었어. 

 

 

 

III. 문화재 지정 목록 

 

그런데 생각보다 도굴 등의 불법행위가 너무 심했는지,

조선총독부는 1916년 「고적 및 유물 보존 규칙」,  「고적 조사 위원회 규정」을 제정하고, 중요 문화재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와 보고, 목록화를 다시 하였어.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1933년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하고, 문화재들을 보물 X호의 지정문화재로 분류했는데,

여기에는 기존 목록의 고적들뿐만 아니라 「신사 사원 규칙」을 폐지하며 사찰의 문화재도 편입, 그리고 천연기념물 등도 반영되어서 완성도 있는 목록이 만들어졌지.

 

1934년 153건부터 광복 이전까지 400건이 넘는 문화재들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때 형성된 지정문화재의 기본적 체계는 큰 틀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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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11년의 부동산(不動産)인 유적이 대부분이었던 문화재 목록과는 그래도 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인식 범위가 한일합병 직후의 태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넓고 유연하게 바뀌었어.

 

물론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건 아니였어.

삼국시대 유적인 휴류산성처럼 광물 매장지여서 2차대전 물자 동원을 위해 지정 해제되어 유적이 사라지게 된 경우도 있어.

 

 

 

IV. 결론

 

1.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지배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의외로 상당히 많은 유적이나 유물들을 꽤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2. 깔 거면 정확하게 알고 까자.

3. 이상한 거로 근거 없이 주장하다가 논파당하면 위안부나 강제징용처럼 정말 심각한 문제들도 주작이라고 물타기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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