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상하이 대첩

컨텐츠 정보

본문

16663752103888.jpeg

때는 2004년 10월 , 6회째를 맞이하는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해당 대회는 한, 중, 일의 프로바둑기사가 5명씩 팀을 이뤄 출전하는 국가대항전 방식의 대회

진행 방식은 승자연전제 방식으로 이긴 사람은 그 다음 경기에도 출전하는 방식

 

 

16663752104604.jpeg

당시 한국팀 엔트리는 한종진 5단, 안달훈 6단, 유창혁 9단, 최철한 9단 그리고 주장인 이창호 9단

한국의 엔트리가 강한 편은 아니라고 평가받았지만 유창혁 - 최철한 - 이창호로 이어지는 라인이 상당히 강력했고

한국은 이전 대회에서도 연속 우승을 해왔으며 이창호 9단은 1회 농심배부터 25연승중이었으니 우승은 할 거라고 기대되었음

 

그런데...

 

16663752104941.jpeg

막상 대회가 시작되니까 한국 프로기사들이 초장부터 떨어져나가는 사태가 발생

1라운드에서 한종진, 안달훈, 유창혁 기사는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하고

최철한 9단이 어찌저찌 1승을 따내긴 했지만 역시 중도 탈락

마지막 라운드에 접어들었을때 한국 선수는 이창호 9단만 남아있게 되었음

그에 비해 일본은 장쉬 9단, 왕민완 9단 / 중국은 뤄시허 9단, 왕레이 8단, 왕시 5단이 남아있었음

 

 

1666375210563.jpeg

16663752106294.jpeg

16663752106968.jpeg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즐거워하는 중국 기사 및 중국 관계자들과 홀로 걸어가는 이창호의 외로운 모습)

 

사실 이 시기의 이창호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

농심배 개최 직전 최근 6국동안 1승 5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니

아무리 봐도 한국이 이길 것 같지가 않았음

이에 중국 언론은 신나서 이번에는 우승한다며 기사를 도배했고

그 중에는 이창호가 우승할 확률이 3%에도 못 미친다는 기사도 있었음

 

그리고 이창호 9단의 판이 시작됨

이창호의 첫 상대는 중국의 뤄시허 9단이었고 228수만에 불계승을 받아냄

 

16663752107551.jpeg

2번째 경기는 일본의 장쉬 9단

일본의 마지막 주장으로 출전할 것이라 예측되던 선수였는데 이창호에게 심리적 압박을 걸기 위해 2장으로 출전한 것

하지만 그런 시도가 무색하게도 이창호는 245수만에 불계승을 받아내고 일본 엔트리 최강으로 평가받던 선수는 허무하게 탈락

 

16663752108283.jpeg

3번째 상대는 중국의 왕레이 8단

애초에 왕레이는 이창호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창호에게 힘들어했던 왕레이는 184수만에 기권, 돌을 거둠

 

 

16663752108899.png

중국과 일본은 슬슬 뭔가 좆된 듯한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했고

 

16663752109621.jpeg

(3번째 대국이 끝난 뒤 이창호 9단을 격려해주고자 농심에서 마련한 회식자리)

한국은 설마 5연승 각이냐? 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음

 

166637521105.jpeg

4번째 대국은 일본의 왕밍완 9단

왕밍완은 한국 기사들에게 약하다고 여겨지던 기사였고 (당시 세계대회에서 한국 기사들에게 6연패 중이었음)

아까 말했다시피 일본은 심리전 걸겠다고 1군 선수를 내보냈다 탈락했으니...

이창호는 204수만에 예상대로 불계승을 받아내고 일본은 패배가 확정

이 대국이 끝나고 대국실에선 30분 정도 정적이 흐름

 

16663752111263.jpeg

마지막은 이창호 9단과 왕시 5단의 대결

단수를 보면 알 수 있듯 싸움이란 게 성립이 안되는 수준

물론 이세돌처럼 간혹 낮은 단수가 9단을 잡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상대는 4연승 중인 이창호 9단임

당시 중국 기원의 왕루난 원장은 "왕시 5단이 잘둬선 이길 수 없다. 이창호 9단이 대형사고를 쳐야지만 이길 수 있다." 라고 말했을 정도

결국 왕시는 204수만에 돌을 던지고 한국의 우승이 확정됨

 

16663752112049.jpeg

이 믿기지 않는 대역전 결과로 아시아 바둑계는 난리가 났음

특히 중국에선 바둑 뉴스가 올라오기만 하면 자국 기사들에게 맹렬한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고

안 그래도 인기가 많았던 이창호 9단의 명성이 더욱 증가해 신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함

나중엔 중국 총리 이름은 몰라도 이창호 9단의 이름을 아는 중국인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음

 

16663752112811.jpeg

(수상식 모습, 행복한 표정의 농심 관계자와 트로피를 들고 있는 한국의 김인 9단)

 

이후 이 농심배 리버스 스윕은 상하이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바둑계의 전설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중국의 칭하오 9단은 이런 말을 남김

"다른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

 

16663752113616.png

참고로 이창호가 출전하기 전 중국과 일본 언론이 한국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취해있을 때

전성기 이창호에게 죽어라고 얻어맞았던 마샤오춘 9단은 다른 평가를 했었음

"나는 언론 보도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1:2 베팅을 해도 나는 이창호 5연승에 모든 걸 걸겠다."

결국 이 말대로 실현된 셈

 

 

16663752120824.jpeg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12,457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