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부키에 나오는 조선 요괴 (feat. 나루토)

컨텐츠 정보

본문

16613622100724.jpeg

 

 

일본 에도시대는 그 시절 브로드웨이 라고 할수있는 가부키(연극)가 유행했는데

 

그 중에 조선 요괴 '모쿠소 호간' 이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일본군이 산에서 머물다 가려하면, 갑자기 커다란 괴물이 솟아나서 일본군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매우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이 모쿠소 호간이 바로 

 

 

16613622101285.jpeg

 

진주 목사 Citizen Kim 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김시민의 이름을 직책인 목사로 착각 했고, 목사의 일본 발음인 '모쿠소' 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간 역시 직책인 판관의 일본 발음이다. '목사 판관' -> '모쿠소 호간'이 되었다)

 

 

 

 

 

 

16613622102054.jpeg

16613622102479.png

 

 

 

또한 18세기에 일본에서는 지라이야라는 두꺼비 요술사를 다룬

 

텐지쿠 도쿠베 이국 이야기(天竺德 兵衛韓)라는 소설과 가부키가 유행했었다

 

이 지라이야의 정체가 바로 '조선의 악마 모쿠소 호간의 아들' ,

 

즉, 김시민 장군의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에 나타난 복수의 화신인것이다

 

참고로 이 두꺼비 술사는 뱀에 의해 요술이 파괴되고 결국 복수는 미완에 그치게 된다 

 

(이야기에는 뱀,달팽을 다루는 술사들도 등장한다)

 

 

 

 

 

16613622104366.jpeg

 

 

충무공 김시민은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후 1583년 여진족인 나탕개의 난 진압에 참여 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 에서 왜군을 격퇴해냈다.

 

임진왜란 발발 하자 진주목사(정3품) 이경이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김시민이 진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김시민은 취임하자 곧바로 염초 150여 근과 총통 70여 병을 만들고

 

정병을 뽑아 사용법을 연마하게 하는 등 성을 지키는 방책을 강화하였다.

 

왜군의 진주성 공략이 시작되자 김시민은 두려움에 도망치려는 부하 장수들과 군민을 너른터에 모아놓고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

 

고을 안에 사는 백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부 성으로 들어오게 하고 여자는 모두 남장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뒤 싸움에 임했다.

 

이후 6일동안 이어진 치열한 혈투 끝에 결국 왜군을 격퇴 하였다

 

 

 

 

16613622105181.jpeg

 

진주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이다

 

다른 두 대첩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사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전체를 통틀어 전쟁의 판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투이다.

 

다른 두 대첩은 하루동안 싸웠지만 진주대첩은 무려 6일동안 싸웠다

 

전쟁 초기 일본은 바다와 달리 육지에선 큰 피해를 입은적이 없었고,

 

진주성에의 패배는 육군 최강이라 자부했던 왜군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왜군은 김시민을 모쿠소라고 부르며 두려워했었다.

 

 

 

 

 

 

 

 

 

만약 진주성이 뚫려 전라도가 점령 당했다면 곡창지대를 내주는것과 더불어 이순신의 수군 전력까지 큰 위험에 빠졌을것이다

 

거시 안목으로 볼때 임진왜란을 사실상 조선의 승리로 결정지은 대단히 중요한 전투인 것이다.

 

3만에 달하는 일본군을 4천 정도 규모의 조선군이 분투 끝에 극복한 것 자체로도 명량 해전 못지 않은 성과라 할수있다

 

일본이 명과 강화 협상할때도 진주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어 철수 못한다 라고 까지 말할정도였다.

 

얼마나 사무쳣는지 후에 2차 진주성 전투에는 모쿠소를 잡겠다고(이미 김시민은 죽었지만 왜군은 몰랐다),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하고 당시 일본 최고 네임드 장수였던 다테 마사무네까지 참전 하며, 장수진을 전국시대 올스타급으로 꾸려서 온다

 

 

 

 

 

 

16613622107649.jpeg

 

16613622109333.jpeg

 

 

 

진주대첩(1차 진주성 전투)은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38세였던 김시민은 전투 중 치명상을 입고 전사하고 만다

 

왼쪽 이마에 총탄을 맞고 9일간 사경을 헤매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 장수는 김시민이었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존재를 전쟁 내내 몰랐고, 나중에 징비록이 일본에 퍼지면서 이순신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 이순신 이름을 몰랐다는 것. 징비록 보고 그때 우릴 괴롭혔던 조선 수군 대장의 이름이 이순신이였구나 하고 알게 됨)

 

 

p.s 해저괴물 복카이센(거북선 요괴)을 일본 장수가 퇴치한다는 내용의 가부키 또한 일본에서 성행 했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30,057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