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황당한 이유로 지옥(Hel)에 간 바이킹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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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hNUJCH3Ce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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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세기 말, 유럽 전역을 휩쓴 북구의 바이킹들은 천년이 넘게도 지난 지금까지도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용맹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이 믿는 북구의 신앙에 따르면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을뿐더러 내세에서도 전사들의 낙원인 발할라(Valhǫll)로 갈 수 있는 열쇠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은 병상에 눕게 되더라도 친족들에 의해 부러 칼을 맞는 억지 발할라 행 티켓을 왕왕 끊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죽는 과정에서 약간 실수가 있었거나 운이 안좋으면 지옥(Hel)으로 가버리는 재수없는 바이킹들도 있었는데, 이번 글에선 가장 기묘한 형태로 발할라에 못 들어가고 지옥가게 된 어느 재수 옴 붙은 바이킹 군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북구인들의 여러 옛 사가(Saga)들에는 전투에서 용맹한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수많은 영웅들의 최후가 적혀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들 중에서 죽은 자에 의해 살해당한 자는 딱 하나, 875년에서 892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지금의 오켈 강 북쪽의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 오크니 제도, 셰틀란드 제도를 지배했던 바이킹 군주 시구르드 에위스테인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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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루드의 묘소(추정)

 

장엄왕 시구르드 에위스테인손

 

  마찬가지로 정복자였던 형의 유산을 물려받아, 스코틀랜드 북쪽의 제도들에 근거지를 둔 이 해상군주는 집요하게 스코틀랜드 본토를 노략질했고, 그의 동료들은 현지인들을 처첩으로 삼았으며 곧 새롭게 정복한 땅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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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트인들의 유물 /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 모티브를 따온 왕좌의 게임 장벽

 

  그러나 이 땅의 원주민들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Picts 픽트인들로 불렸던 이들은 전성기의 로마제국마저 이들에 대한 정복을 포기하고 거대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세우게 할만큼 호전적이었으며 이전 수세기 동안 잉글랜드 남부의 따뜻한 소왕국들을 노략질하고 브리튼 여인들을 납치해 첩으로 삼았으며 새로운 침략자 바이킹들과 마찬가지로 해상무역=해적질에 종사했고, 로마의 해안선을 따라 해안가를 약탈하곤 했었다.

 

 바이킹들과 같은 감성을 공유하고 있던 그들은, 고향을 넘보는 새로운 침입자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40인 다多vs다 막고라 였다.

 

  모레이의 픽트 부족장 어금니군주 말 브리그테(Máel Brigte the Tusk)는 그리하여 자신의 영토인 모레이 지역에 요새를 건축하는 이민족들의 군주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정해진 장소에, 각각 40인의 전사들이 모여 명예로운 결투를 하자는 것이었다. 명예에 살고 죽는 바이킹들에게 있어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These two agreed between themselves to meet, Sigurd and Melbricta toothy the Scot-earl, that they should meet and settle their quarrel at a given place, each with forty men. )

 

그러나 시구르드 에위스테인손은 비겁하지만 영리한 사람이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을 때 그는 생각했다.

 

"픽트인들이 과연 약속을 지킬까?"

(And when the day named came, Sigurd thought to himself that the Scots were faithless.)

 

 그리하여 교활한 바이킹 군주는 말 40마리에 각각 두 사람씩을 태우기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80명의 전사들을 끌고 간 것이다. 약속장소에 두배의 적군이 등장한 것을 보고 픽트족의 어금니군주는 당황했다.

 

  "이제 우리는 시구르드에 속았다. 말 한 마리에 두 사람의 발이 있는 것을 보니 적은 우리의 두배다. 이제 마음을 굳게 먹고 죽기 전에 각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

“Now are we cheated by Sigurd, for I see two feet of a man on each horse’s side, and the men must be twice as many again as the steeds that bear them. Let us now harden our hearts, and let us see that each has a man for himself ere we die;”

 

  그렇게 용맹한 어금니 군주가 "뒤질때 뒤지더라도 적어도 1인분은 하고 뒤져!"라고 외쳤지만 쪽수가 두배 차이나는 싸움을 어찌 해볼 수는 없는 노릇...결국 픽트인들은 전투에서 패배했고, 어금니 군주의 잘린 머리는 시구르드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수급은 시구르드의 말안장에 묶였으며, 전투에서 교활한 방법으로 승리한 이 바이킹은 그 유명한 어금니 군주의 어금니를 자기 다리에 한번 스윽 문질러서 티배깅을 하고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앗 따거!"

 

 

  말에 박차를 가하자 적장의 수급은 묶어놓은 줄을 따라 공중으로 이리저리 흔들렸고 튀어나온 날카로운 어금니는 시구르드의 종아리에 상처를 냈다. 죽은 자의 마지막 복수였는지, 그 상처는 감염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시구르드는 펄펄 끓는 열 속에서 세상을 떴다. 후시딘만 발랐어도 아물었을 상처로 인해 지옥으로 가게된 것이다.

 

참고문헌: 오크니 사가(Orkneyinga saga) 영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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