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동정은 누구의 것인가? (용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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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쓰러졌다. 

 

.... 그리고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 Lv.1 해독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

 

내가 먹은 거라곤 버섯 수프밖에 없는데. 버섯의 어딘가가 잘못되었던 걸까? 해로운 효과가 뭔진 몰라도 얼른 일어나 알려야 한다. 

 

" 물론입니다. 오크가 먹어도 6시간은 쓰러져 있을 만큼 수면제를 투여했습니다. "

 

수프 안에 오크가 처먹어도 6시간은 쓰러져있을 수면제가, 시발. 뭐라고? 

 

" ... 이대로 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아? "

 

어딘가 들떠 보이는 엘프의 목소리가 희마하게 들려왔다.

 

해독이 있다곤 해도 저렙의 패시브 스킬. 흐릿한 수면제의 기운이 머리부터 손끝을 맴돌고 있어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들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 자 그럼 지금부터... "

 

사실 파티원 모두가 마왕에게 매수당한 암살자들일지도 모른다는 무지에 대한 공포가 그 크기를 끝없이 불려나가다, 이어진 말 한마디에 긴장의 끈이 뚝 하고 떨어져 버렸다. 

 

" 제 1회차. 용사의 동정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뭐요 시발? 

 

아니, 애초에 나 동정도 아닌데? 

 

난데없이 벌어진 한밤중의 회의는 그토록 자신이 처녀라고 주장하며, 꼬우면 직접 확인해 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엘프의 비처녀 커밍아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발년. 그럴 줄 알았어. 엘프라는 것들은 믿을게 안된다. 

 

그 다음은 마법사의 차례. 

 

섹스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럴 시간에 마법 주문이라도 하나 더 외우겠다는 대답이나 할 줄 알았던 마법사의 파격적인 행동은... 

 

" 섹스의 방법은 물론, 어떤 식으로 해야 남성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도 충분합니다. "

 

... 솔직히. 조금 섰다. 

 

" 이... 이건 불공평해요! "

 

그 다음은 사제의 반격이었다. 조용하고 나긋한 성격의 소꿉친구. 누군가 놀려도 조용히 웃으며 넘기던 그녀가, 아마도 처음으로 다른이들에게 분노 아닌 분노를 표출한 순간. 

 

이제껏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속마음을 몰래 들여다본 것 같아 괜한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 뭐라고요!? 제가 자X도 못 봤다고요!? 아니에요! 마법사님이나 엘프님은 그림으로든 다른 사람 것으로든 본 적 있어도! "

 

?

 

" 저... 저는 용사님의 것을 직접 봤거든요! "

 

???

 

아니 시발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향하는 건데. 

 

분하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는 엘프와 당했다는 표정을 짓는 마법사. 니들은 뭘 질투하고 있는 거야. 

 

" 그만! 다들 그만해! "

 

퉁 퉁. 무언가로 땅을 두드리던 소리가 나더니, 이 미쳐버린 회의의 유일한 정상인. 스승님이 입을 열었다. 

 

" 지금 이게 전부 뭐 하는 짓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누가 지나가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

 

그래. 이거지. 역시 스승님이야 믿고 있었다고! ...라는 기대도 잠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그럼 그쪽은 용사의 동정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

 

당연한 소리를. 우리 스승님이 어떤 분이신가. 마왕을 토벌하는 나를 돕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와 명예 모두를 쥘 수 있는 왕국의 기사단장 자리조차 박차고 나선 정의로운 분이신데...

 

" ... "

 

스승님? 

 

" ... 아, 아니... 뭐... 제자가 굳이 나랑 하고 싶다면야 내가 그걸 거부할 이유는... "

 

정정하겠다. 정의로운 스승님은 사실 나를 따먹기 위해 파티에 합류한 것인가 보다. 

 

검술 지도를 해주겠다면서 복근을 어루만질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는 것을 미쳐 막지 못했고... 

 

" 으음... "

 

작은 신음 소리는 결국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이제껏 시끄러운 대화소리가 마치 신기루인 것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노골적으로 닿아오는 네 쌍의 시선. 

 

... 들켰나? 

 

상황 파악을 위해 정적 속에서 실눈을 떴을 때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마법사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좆됐다. 이대로라면 나를 따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넷에게 둘러싸여 그대로 착정당할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쉬지도 못하고 메챠쿠챠...

 

1초. 2초. 3초. 

 

짧은 시간이지만 이제껏 살아온 인생보다 더 긴 것 같은 3초가 흐르자 마법사가 검지를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에 올리더니, 자신의 스태프를 가져왔다. 

 

" 이렇게 약에 취해있는 동안이라면 간단한 최면 마법은 쉽게 통과할 겁니다. 그러니 이걸로... "

 

아니, 잠깐만. 

 

" 직접 물어보죠. 우리 중 누구와...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지. "

 

차가운 스태프가 머리에 닿자 그보다 차가운 마나가 머리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아직 괜찮다. 이 정도라면 항마력으로 이겨낼만... 시발.

 

차가운 마나는 머리를 타고 흘러, 배까지 내려가더니... 남자라면 모두 소중한 그곳을 조용히 감싸 쥐었다. 

 

거짓말하면 터트릴 겁니다.

 

마법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조용히 메아리쳤다. 간단한 최면 마법과 그보다 단순한 협박. 

 

그 누구를 지목하더라도 남은 세 명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보다도 힘든 질문. 

 

최선의 답을 고르기 위해 움직이던 뇌는 최면 마법에 저항하는 걸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고,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진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나 동정 아닌데? "

 

시발.

 

" 그, 그럼 대체 누구랑...!? "

 

당황한 소꿉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직 수습할 수 있다. 그래. 차라리 어릴 적 사제를 밤중에 덮쳤다고 하면... 

 

" 일주일 전에 지낸 도시에서... 돈만 주면 밤에 찾아오는 서큐버스가 있다길래... "

 

좆됐다. 

 

" .... "

 

체감상 주변의 온도가 영하까지 내려가 버린 듯했다. 작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주춤할 정도로. 

 

어머니가 내게 곧잘 해주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어디 나가서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고 다니지 말라던 한마디. 어머니

.. 출가한 불효자는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습니다.. 

 

고민에 빠진 사이 살 에는 듯한 냉기는 그보다 더 날카로운 살기가 되었다. 

 

" 어쩐지 박쥐 냄새가 난다 했더니... "

 

" ... 정화. 정화해야해요. 용사님부터 그 도시 전부... 모두 불태워야... "

 

" 위치 추적 중입니다. 일주일 전 도시라면 하루 안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

 

" ... 서큐버스면 마족. 토벌해야겠지. "

 

파티원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흑화 해버리고 있을 때, 아마 마왕의 사천왕과 싸울 때보다도 맹렬히 돌아간 머리가 한 가지 해답을 내놓았다. 

 

이게 통할까? 

 

방금까지 자X를 빨고 있던 입이랑 키스하는 건 뭔가 묘해서 키스는 아직이었기에. 어쨌든 진실이긴 한 사실 하나를 혼잣말인 것처럼 조용히 내뱉었다. 

 

" 그래도... 첫키스는 아직이야... "

 

짧은 정적. 그리고 되살아난 파티원들의 의지를 대변하듯 움츠러들었던 모닥불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젠 나도 몰라 시...발...

 

너무 많은 힘을 쏟은 나머지, 차근차근 조여오던 수면제의 약효에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 . . . . . . . . . . . . .

 

용사의 파티가 제 2회. 용사의 첫 키스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제의 기습적인 육탄공세로 이어지고, 이를 막아낸 여기사와 숨 막히는 대치상태에 이르렀을 때 즈음. 

 

이 파티의 본질적인 목표. 마왕성에서는 절규에 찬 인간들의 비명소리가 아니라 분노에 찬 마왕의 짧은 고함이 울러펴졌다. 

 

" 저년이! "

 

중간계의 흥망을 정하기 위한 전장의 지도가 놓였던 책상 위에는 용사 파티가 지나간 도시들이 표시되어 있었고. 

 

"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더니! 앙큼하지 않느냐? "

 

인간의 파멸을 속삭이기 위한 대화의 창구가 되었던 거대한 수정구는, 용사 파티의 기묘한 회의를 비추고 있었으며. 

 

" .... 실로 그러하옵니다. 전하. "

 

" 흥. 되었다. 그년은 잡아왔느냐? "

 

무력한 인간들에게 어두운 밤의 공포를 새겨주었던 죽음의 기사는, 자신의 동료이자 사천왕 중 한 명인 서큐버스를 잡아오고 있었다. 

 

" ... 예. " 

 

" 죽이는 것은 아까우니 한 달간 남자 근처도 못 가게 가두어 놓거라. "

 

" 차라리 죽여주세요!!! "

 

멀리서 서큐버스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마왕이 시끄럽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큐버스의 절규가 점차 잦아들고 완전히 조용해졌을 때. 

 

" 그래... 처음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

 

홀로 남은 마왕은 수정구의 화면을 돌려 싸우고 있는 용사의 파티원을 저 멀리 치워버린 채, 곤히 잠들어있는 용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붉은 혀로 입술을 훔쳤다. 

 

" 그 끝이 본녀의 것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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