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키운 발렌타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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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가 세계적인 기념일이지만 한국일본처럼 여성만이 초코를 주는 날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는데,
아시아에선 왜 이렇게 변한것일까?
이것은 일본업계의 노력, 그리고 페미니즘과 연관이있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자고 처음 제시한 곳은 1936년 일본 고베의 ‘고베 모로조프 제과’라는 곳이다.
모로조프 제과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발렌타인 초콜릿을 전합시다” 라는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캠페인은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인지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본기념일협회에서는 메리쵸코를 발렌타인 초콜릿 문화의 창시자로 공인한다.
이후에도 1958년 메리초코라는 일본의 제과점은 여성이 남성에게 주는 메리의 발렌타인 초코라는 상품을 기획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여성은 남성에게 선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에 반대되는 캠페인을 펼친것이다.
그러나 판매된 초콜릿은 겨우 3개.
역시 실패한다.
그런데 1960년대에 상황이 바뀐다.
196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던 전공투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의 고학력 여성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이 크게 퍼지게 되는데.
이게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을 주는 발렌타인 데이가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것.
이에 많은 여성들이 발렌타인 데이에 고급 초콜릿을 사서 좋아하는 남성에게 고백하기 시작하며 초콜릿 매출이 늘어난다.
이후 발렌타인 데이 =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는 공식이 굳어졌고,
이것이 한국에까지 상륙하게 된다.
이렇게 1960년대 후반에는 발렌타인이 정착되고 대중적 문화로 정착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미혼 여성이 사귀거나 고백하려는 남성에게만 전달하니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남성들이 생겨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대부분의 초콜릿이 고백용이다 보니. 고급 초콜릿의 매출만 늘어나는 문제도 있었다.
이 부분을 소니(SONY)의 창업자 중 한명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파고든다.
그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대량으로 구매해 주변 남성들에게 선물하는 캠페인을 한다.
의리 쵸코의 탄생이였다. 의리 초콜릿의 탄생으로 저가형 초콜렛의 매출도 상승하기 시작한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발렌타인데이 판촉 행사 기간에 팔리는 초콜릿의 양이 1년 동안의 초콜릿 판매의 1/4에 이른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너무 상업화됐다는 지적이 있기도하지만, 그래도 발렌타인 초콜릿이 완전히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https://ppss.kr/archives/17578
https://pgr21.com/freedom/97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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