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그림은 상상화가 아니다 (feat. 기록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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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1월 21일 임진 2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누선을 거북선으로 고칠 것을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 최동악이 치계하다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 최동악(崔東岳)이 치계(馳啓)하기를,

"누선(樓船)은 거북선처럼 민첩하지 못한데, 본영에는 누선만 많고 거북선은 적습니다. 누선 6척을 거북선으로 고치소서."

하였는데, 비변사가 아뢰기를,

"누선 10척 가운데 3척을 거북선으로 만들면 적절할 듯합니다."

하니, 따랐다.

 

우선 정조 15년 (1791년)에도 거북선은 현역이었고

(고종때까지 쓰는데 정조실록을 들고온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함)

 

 

https://hcs.cha.go.kr/html/HtmlPage.do?pg=/n_hcs/library/library0301.jsp&mn=HCS_03_03_01&num=0304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의 귀선도설(龜船圖說)에는 두 가지 거북선 그림과 함께 각 부재의 치수가 상세히 나와 있어, 우리는 비로소 거북선의 구조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정조 19년에 왕명으로 간행한 이충무공전서에 거북선 그림이 남아있다

왕명 ㅈ까하고 상상으로 그렸을거라는 해석보다는

저게 거북선 그림이 맞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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