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계에서 유독 올려치는 인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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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예술가이자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거론되는 인물로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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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사대부 집안의 딸로서 가부장적인 사회의 온갖 병폐를 목격하고 자라나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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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는 결혼만은 평생 하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집안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당시 연애 중이던 최승구와 결혼을 하게 된다

 

 

최승구와 사이는 좋았던 듯 한데, 안타깝게도 최승구는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나혜석은 이에 크게 상심하여 이후에 들어오는 모든 중매 자리를 거절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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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안이 보채는 통에 친일파 김우영과 몇 번 만남을 가지고 결혼하게 된다

 

 

이 때 나혜석은 김우영에게 4가지 조건을 내거는데

 

 

1.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줄것 (첩을 들이지 말것)

 

2. 그림을 계속 그리게 해줄 것

 

3. 시댁과는 따로 살게 해줄것

 

4. 최승구의 묘비에 비석을 세워줄 것

 

 

이 4가지였다

 

 

당시 기준으로 매우 파격적인 이 4가지 요구를 김우영은 모두 수락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으며 부부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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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혼 생활이 몇년이 지났을까

 

 

김우영은 일본 외무성이 주관하는 포상 휴가의 대상자가 되어 세계일주 여행을 하게 되고

 

나혜석은 이에 동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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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친일파 외교관 최린을 만나게 되는데

 

최린과 나혜석은 파리에서 단번에 사랑에 빠져서

 

수십번 만남을 가져, 파리 유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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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공부하던 김우영은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파리로 돌아와서

 

 

최린과 나혜석의 밀회를 목격하게 되고 배신감에 빠진다.

 

 

그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뒤 새로운 여자와 교제를 시작하며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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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이에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며 이혼할 뜻이 없음을 밝혔지만

 

김우영이 이혼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이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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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은 이혼한 나혜석과 더 만남을 가지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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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그런 최린을 정조 유린죄로 고소했으나 패소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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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전부터 여성 독립과,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비롯한 다양한 글을 기고하였는데

 

모(母)된 감상기에 등장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는 표현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글을 써서 대중들의 비판을 듣곤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바람을 피우다 이혼하였으니 이미지는 더할 수 없이 바닥을 떨어졌고

 

 

대중들의 비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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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은 나혜석에게 양육권을 가져간 상태였고

 

 

그와 나혜석 사이에서 나온 아들 딸들은

 

 

나혜석이 늙고 난 뒤에도 그녀의 방문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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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늙고 자식과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나혜석은

 

 

중풍과 파킨슨 병에 시달려 요양원에 들어갔으나

 

 

자식들이 보고싶어서 요양원을 탈출

 

 

1948년 길가를 떠돌아다니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무연고자 병동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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