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구미호가 찾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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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님, 드디어 다시만났네요!"

 

 

 

 "예...?"

 

 

 

 어느 겨울 갑자기 찾아온 그녀는

 

 

 

 "소녀, 이 날만을 계속기다려 왔답니다."

 

 

 

 천진난만하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가고 싶은 곳 있으십니까? 전 우선 그 바위에..."

 

 

 

 조금 제멋대로인

 

 

 

 "아,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죄송해요. 500년 만에 만난게 너무 기쁜 나머지..."

 

 

 

 구미호였다.

 

 

 

 "사람 잘못보신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설마 절 몰라보시겠습니까?"

 

 

 

 "몰라보고 자시고 간에 전 꼬리 아홉개 달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방금 처음 알았거든요"

 

 

 

 "에? 아니 이게...그 땡중 놈이 거짓말을 한건가? 아니 하지만 이 영혼은 분명 서방님이 맞는데?"

 

 

 

 혼란스러운지 이번엔 혼자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는 그녀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해보죠"

 

 

 

 "...네"

 

 

 

 이대로는 계속 같은 상태일 것 같아 일단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일단 방 한쪽에 그녀를 앉힌다.

 

 

 

 상을 꺼내와 그녀 앞에 놓은 뒤, 맞은 편에 앉았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눈짓하자 그녀도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그녀.

 

 

 

 구미호의 힘을 다루기 위해 전국을 돌며 수행을 떠난 일

 

 

 

 그러다가 만난 이호진이라는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은 일

 

 

 

 그리고

 

 

 

 그가 불치병에 걸려 죽은 일까지

 

 

 

 "전국을 돌며 영약을 찾아다녔지만 서방님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가셨지요. 그리곤 결국..."

 

 

 

 어두운 표정으로 뒷말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절망에 빠져 무의미하게 보네는 나날이었지요."

 

 

 

 "그렇군요"

 

 

 

 아까부터 맞장구 쳐주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별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 슬픈 이야기를 늘어놔 봤자니까.

 

 

 

 아까 이호진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표정 변화가 재밌어서 내버려 두고 있었더니 그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슬슬 끝날거 같으니 다행인가

 

 

 

 "그때, 지나가던 중이 그런 절보다 못한건지 말했습니다. 미래에 지금 이 장소에 서방님이 계실테니 찾아가라고"

 

 

 

 아까의 어두운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이번엔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뇨, 이 영혼의 파장은 서방님이 확실하세요."

 

 

 

 "그렇게 말해도..."

 

 

 

 내가 곤란한 기색을 내비치자 그녀 또한 귀와 꼬리를 축늘어뜨렸다. 

 

 

 

 "그렇죠. 기억이 없다고 하셨으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해도 곤란하시겠죠"

 

 

 

 처음봤을 때와는 상관되게 의기소침해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니면 그래도 아까 이야기를 들었다고 감정이 동했던 탓일까

 

 

 

 "그럼 이렇게 하죠. 아까 말했던 그 바위라고 했던 가요? 그런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맞아요! 기억이 나실 수도 있죠!"

 

 

 

 내 말에 바로 기운을 되찾는 그녀

 

 

 

 "아예, 기억나실 수 있는건 모두 해보도록 하죠! 일단 같이 사는 거부터 해서..."

 

 

 

 "잠깐만요. 같이 산다고요?"

 

 

 

 "네! 그때와 같이 생활해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될테니까요!"

 

 

 

 "아니 지금 이 좁은 방에 들어오겠단 겁니까?"

 

 

 

 내 자취방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도 잠시 방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 그럼 제 집이 넓으니까 거기로 가는건...?"

 

 

 

 "지금 저더러 처음보는 사람의 집에 넙죽 따라가라는 겁니까?"

 

 

 

 "역시 그렇죠..."

 

 

 

 기운이 없어지길래 가만히 냅두니 아니지 괜찮지 않나? 아니면 이대로 이 건물을 사는 것도...

 

 

 

 따위의 소리를 하기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오늘이랑 같은 요일에 만나는 걸로 하죠"

 

 

 

 "네?"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사는건 무리고, 저도 생업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어울려 드릴게요."

 

 

 

 일단 말하고 봤지만 아까의 반응으로 봐서 아마 쉽게 납득해주진 않을 것이다.

 

 

 

 "네! 그렇게 하죠!"

 

 

 

 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승낙해줬다.

 

 

 

 "헤헤, 역시 서방님이 맞으시네요."

 

 

 

 심지어 저런 소리를 하며 얼굴을 붉히는게 뭔가 기뻐 보이는 눈치다.

 

 

 

 아무튼 그렇게 그녀와 나의 전생의 기억을 찾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1년 가까이 그녀와 어울렸다.

 

 

 

 때론 그녀의 요술로 금강산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아플 때 먹었다는 동대산 생명수도 마시기도 했다.

 

 

 

 기억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지만

 

 

 

 하루는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만큼이나 돌아오지 않는데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그러자 그녀가 답했다.

 

 

 

 "서방님을 다시 만나기 까지 수 백년의 세월을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이건 겨우 1년도 안되었는데 포기할리가 없지요."

 

 

 

 "그래도 어떤 것도 생각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처음 만났을 때, 하신 얘기 기억 나시나요?"

 

 

 

 "뭐가 말입니까."

 

 

 

 "일주일에 한 번 만나자고 하셨지요. 전생에 저와 처음 만나던 날도 비슷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녀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곤 말을 이었다.

 

 

 

 "칠 일에 한 번 만나로 올터이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

 

 

 

 "서방님께선 모르시겠지만 제 눈엔 보입니다. 분명 그때와 같은 모습을 종종 보이시는 것이"

 

 

 

 "그렇...습니까."

 

 

 

 내가 조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다른 준비도 해놨으니"

 

 

 

 "다른 준비?"

 

 

 

 "전생을 떠올려주게 해주는 약 말입니다. 드이어 완성이 머지 않았답니다."

 

 

 

 갑작스런 그녀에 발언에 난 뒷통수를 망치로 맞은거 같았다.

 

 

 

 "아니 그런게 있었으면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겁니까?"

 

 

 

 "그야 그 약의 재료가 굉장히 희귀해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데다가..."

 

 

 

 "그리고?"

 

 

 

 "당시의 서방님은 이런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저를 만나주시지 않으실것이 확실했으니까요."

 

 

 

 그리 말하며 장난스레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약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이 의문을 해결해주길 빌면서

 

 

 

 

 

 물 속에 있는거 같은 느낌이다.

 

 

 

 마치 태아가 된 것 같은 감각 속에 눈 앞에 어떠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 남자의 인생.

 

 

 

 조선의 어느 양반가에서 태어난 도련님의 이야기.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가문을 유지할 수 있게 소과만 합격한채 유랑 다니기를 선택한 한량.

 

 

 

 그가 상처 입은 구미호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산 속에서 단 둘이 살다가 불치병에 걸려 사별하기까지의 과정.

 

 

 

 그 모든 것이 빠른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치고

 

 

 

 "헉"

 

 

 

 현실로 돌아온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약을 먹으면 하루 동안 잠들거라며 이끌여온 넓다란 방.

 

 

 

 그리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쳐다보는 그녀가 있었다.

 

 

 

 "어떠십니까? 드디어 기억이 나셨습니까?"

 

 

 

 검은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나며 날 응시한다.

 

 

 

 "네,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답을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끓지만

 

 

 

 "역시! 이제 서방님과 백년해로 하는 일만 남은걸 생각하니..."

 

 

 

 "아마 당신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겠지요."

 

 

 

 "네?"

 

 

 

 그럴 순 없다. 그건 그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옳지 못한 일이다.

 

 

 

 "아무리 영혼이 같다한들, 기억이 들어온다 한들, 변하는 건 없습니다"

 

 

 

 "무슨...소리신지..."

 

 

 

 몸이 굳은 그녀를 보며 계속 말한다.

 

 

 

 그녀가 외면하고 있던 그리고 내가 계속 의심하고 있던 진실을

 

 

 

 "조선 양반가의 이호진이란 자와 대한민국 서민층의 김진우란 자는 전혀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

 

 

 

 가면이 무너진다.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형성된 자아가 다릅니다. 제가 그를 연기할 수 있을지 언정 그가 될 순 없습니다."

 

 

 

 "그만"

 

 

 

 부정하던 사실을 직시한다.

 

 

 

 "저보다도 오래산 당신이 이걸 모를 리 없지요. 분명 은연 중에 그리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만하라고..."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 요기가 날 옥죄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 심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미련일까.

 

 

 

 허면 그것을 부술수 있게끔 담담히 고한다.

 

 

 

 "그러니 절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신거겠지요."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제야 그녀는 내게 본모습을 보인다.

 

 

 

 "500년...자그마치 500년이다."

 

 

 

 "..."

 

 

 

 "단 하나의 희망만을 쫓아 그 사람이 없는 500년을 견뎌왔다."

 

 

 

 여우가 울부짖는다.

 

 

 

 "오직 그 사람이 돌아왔을 때 완벽하게 맞아줄 준비를 하면서!"

 

 

 

 오랜 세월, 결코 울지 않았던 여우가

 

 

 

 "그리고 그게 눈 앞까지 왔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순간까지"

 

 

 

 그러나 이런 순간에서도

 

 

 

 "그런데 그게 모두 허상이라니...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당신은

 

 

 

 "싫다. 그이가 없는 세상 따위, 그딴 무가치한 지옥 따위, 더는 싫단 말이다!"

 

 

 

 나를 보고 있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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