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북한군이 낙동 강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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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모든 지역 을 1달만에 다 점령하고 낙동 강까지 진격했음.
1950년 8월 15일. 임시 수도 인 대구 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하고 2일만에 수도 를 부산 으로 옮긴 한국 정부.
당시 북한 종군작가였던 김사량에 기록에 따르면 북한군의 한반도 적화통일이 코 앞이었고, 단 1승만을 남겨두고 있었음.
한국 군과 미군은 낙동 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혈투를 펼치고 있었지만, 어느 한 곳이라도 뚫린다면 사실상 전쟁이 끝나는 상황 이었음.
가장 큰 이유는 미 제5공군이 보유한 제트 전투기로 북한군이 보유한 프로펠러 전투기를 모두 괴멸시키고 제공권을 장악했기 때문.
한반도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낙동 강 방어선으로 오는 다리를 모두 끊어버리고 보급창고를 폭격하여 북한군의 보급 시스템을 마비시킴.
정작 낙동 강 아래로 고립된 한국 군과 미군은 일본 으로부터 안 전하게 식량과 군수 물자들을 보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가 뒤집어짐.
미공군은 북한의 보급로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낙동 강 방어선 전투에도 참여하여 대 활약함.
미공군이 낙동 강에서 선전한 덕분에 미군은 정예부대 를 빼돌려서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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