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한반도를 상징하던 풍경..

컨텐츠 정보

본문

16745581609639.jpeg

 

원래는 '쪽구들'로 난방을 하던 것이 18세기부터 전국적으로 온돌이 보급되면서 

극심한 민둥산이 양산되기 시작했음.

 

이익의 '성호사설'이 1760년에 나왔는데, 거기에 보면 100년 전만 해도 

사대부 기와집같은 큰 집도 1칸, 2칸만 온돌이었는데 이제는 전국에서 전부 온돌을 쓴다고 나옴.

 

수도의 땔감 문제는 그보다 좀 더 빠른데 

조선왕조실록에는 1681년부터 온돌이 점차 늘어서 궁궐에 나무를 공급하는 땔나무꾼들이

근처에서는 나무 못구해서 멀리서 구해와야 해서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고 대신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옴. 

 

조선총독부가 조사할 무렵에는 이미 전국의 67%가 민둥산 (무립목지 + 치수발생지) 이었음 

한반도 전체에 33%의 숲이 남아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험준한 곳 뿐이었음

현재 야산에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이 60년대부터 사람의 힘으로 심은 인공림들.

 

그 때문에 구한말 쯤 되면 이미 호랑이나 표범 수는 극히 줄어있었음. 

아니 영조실록 까지만 올라가도 조선 남부 지방에는 남은 호랑이가 극히 적었음. 

거기에 명줄 결정타를 날린게 해수구제 - 6.25 전쟁.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숲이 살아있었으니 많았겠지만 사실 1920년대 쯤 되면 표범, 호랑이는 거의 멸종 수순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04,257 / 4620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