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세 시대 에는 교회가 지배하는 영지가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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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제에 대 해 알아보기 시작 한 한국 인들은 몇가지 의문점을 가지기 시작 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이것 일 것 이다.
"그래, 교황령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이해하겠다. 그런데 주교라는 새끼들까지 봉건 영주처럼 영지를 가지고 있다고?"
"예수님 도 가이사의 것 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셨는데 중세 교회가 타락한데 다 이유가 있구만?"
같은 생각이 들며 예수쟁이 씹새끼들의 타락을 막 지적하고 싶어지는 것 이다.
"우리도 이런 결과를 의도하고 시작 한건 아니야;;"
(이미지는 쾰른 대 주교구의 상징)
하지만 당연하 게도 주교나 지역 교회도 처음부터 봉건 영주가 될 생각으로 이렇게 된 일은 아니었다.
이 일이 여기까지 흘러가게 된 것 은 서로마 말기 혼란상을 조금 알 필요가 있다.
(4~5세기. 서로마 제국)
"님 , 님 !"
"?"
"님 돈 도 많고 명망 높은 시민이신데, 공직 출마도 하시고 도시 원로원에도 들어오시죠?"
"도시 원로원? 그런건 로마에나 있던거 아님 ?"
(로마 속주의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들은 로마와 유사하게 원로원도 있고 각종 도시 공직이 있어 이를 투표로 선출했음)
"뭐, 그래도 이제 명예도 원하긴 했고 그 동 안 도시에서 받은 혜택도 있긴하니 봉사하도록 하죠. 그래서 공직에는 당선 되었는데 제가 할게 뭡니까?"
"뭐긴요. 당선빵으로 도시 빈민들에게 대 규모 적선하시고 축제도 여셔야죠."
"?"
"아, 그리고 로마 전통에 따라 님 공무에 들어가는 모든 예산은 개인 재산으로 처리하시는거 알죠? 도로 보수, 도시 계획, 지역 재개발, 주변 군부대 지원, 빈민들 복지 서비스까지 부탁해요 ㅎㅎ"
"ㅅㅂ 안 함 ㅅㄱ"
그렇다. 로마 역 사를 조금이라도 배웠던 사람 들은 알겠지만 로마 시대 공직은 명예 원툴에 가진 놈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돈 만 왕창 쓰는 자리라 부담이 큰 자리였던것 .
그나마도 로마가 건전하게 돌아가던 시기에는 지역 도시 공직이나 원로원도 나름 권한이 있고 존경받는 자리라 많이들 하려 했지만, 제국의 역 사가 오래되며 중앙의 황제에 권력과 명예가 집중되어 각 도시 공직은 명예도 없이 돈 만 쓰는 자리가 되었다.
결국 아무도 도시 공직을 맡으려 하지 않으니 도시 꼴은 개판 이 되어갔고 인프라는 노후화 하기 시작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도시 거주의 메리트가 줄어드니 부자들은 자기 농장이 있는 교외 지역 으로 탈출하고 노예들을 부리며 왕처럼 살기 시작 하는데, 이것 이 중세 초기 장원과 봉건제 그리고 농노 제도의 시작 점 중 하나이다.
"이대 로면 도시 망하게 생겼는데;; 빈민 복지도 도맡아서 하고 도시 시민들을 위해 돈 내고 봉사할 호구새끼가 정말로 아무도 없을까?"
"잠깐!"
"?"
"도시 꼬라지를 보니 도저히 안 될것 같소. 내가 입후보해서 도시를 정상화 하겠소."
"올 ㅋ 호구... 아니 후보 오셨어요? 그런데 님 은 누구세요?"
"나는 이 지역 교구의 주교요. 내가 사목하는 신도들의 생활이 똥통에 처박히는 모습 은 눈뜨고 봐줄수가 없소!"
그리고 이 지역 도시들의 무정부 사태에 개입한것 은, 당시 국교로 인정받은 뒤 제국 전체에 퍼지던 기독교 교회였다.
기독교가 국교가 된 만큼 교회는 일종의 공공기관 같은 위상이었고, 추가로 이들은 원래도 십일조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공공사업이나 복지 같은 일도 탄압받던 지하 교회 시절 부터 하던 일이니 그들이 도시 공직을 담당하는 것 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좋소. 이제 임기도 끝났고 도시가 정상화 되었으니 나는 이만 물러가겠소. 이제 투표를 통해 민간인 공직자를 뽑으시구려."
"저... 주교님 ?"
"?"
"님 말고 지금까지 후보자가 없어서 개판 이었던건데 무슨 개소리를 하세요. 차 기도, 차 차 기도 님 이 이 도시 시장이에요. 그리고 혹시 사망하시거나 임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셔도 이쪽 교구 후임 주교가 계속 시장 해야한다고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상황 은 고착화 되었다. 공직 해먹을 놈들은 다 교외 자기 장원에 틀어박혀 있는데 다른 수가 있을까?
추가로 이런 상황 이 벌어진 뒤 얼마지나지 않아 서로마 제국은 나라가 망할정도의 혼란기가 찾아오고 게르만 야만인 놈들이 온 서유럽을 뒤집어놓고 있는데 이런 위기 상황 에 안 정된 리더쉽을 요구하게 된 것 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였다.
그렇게 당시 교회에 행정을 떠넘겼던 수많은 도시와 지역 들이 중세 봉건제 시대 에는 주교령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고, 사정을 모르는 한국 인들이 보기에는 세속에 찌든 타락한 성직자들의 상징이 된 것 이다.
번외
"우리 지역 은 게르만 야만족들이 점령하긴 했지만 덕분에 무정부 상태는 아니야. 군대 도 강해서 다른 놈들이 약탈하거나 공격하러 올 일도 없다고."
"우우... 샤를마뉴 다 찢고 죽인다!"
"자, 국왕님 ? 이제 세금도 걷고 국가 인프라도 재정비 하시고 통치도 하셔야죠?"
"우으... 샤를마뉴 글 모른다!"
"..."
"신부님 !!! 빨리 와서 행정업무 좀 봐줘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였기에 교회는 공공기관의 위상이었다. 실제로 행정 자료도 많고 행정업무에도 익숙했던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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