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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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6일

 

제네바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은 회담이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 당국자들도 "우크라이나 문제가 조금 우려되기는 하나, 잘 처리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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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몇 주 뒤, 푸틴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일체성에 대하여>라는 글을 기고한다.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하나였지만 소련의 조작과 서방의 개입으로 다른 나라가 되었다는,

전형적인 침략자의 논리였다.

 

일견 "푸틴이 푸틴했네"로 보이는 이 글은 뜻밖의 결과를 낳는데

기고문을 읽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의 동향을 재검토하고, 푸틴의 의도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는 8월부터 벨라루스와 대규모 군사훈련에 나섰다.

뒷날 밝혀졌지만 이는 키이우의 보리스필 공항 등 주요 기반시설을 폭격하고 점령하는 훈련이었다.

 

8월 26일, 바이든은 경고 차원에서 6천만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안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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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0월의 어느 아침, 백악관 오벌 오피스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번스 CIA 국장

에이브릴 헤인즈 DNI 국장

마크 밀리 합참의장

 

미국 국가안보 수뇌부가 모두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를 소집한 건 설리번 보좌관이었는데,

 

6월에 "우크라이나 문제는 잘 해결될 것"이며 "침공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한 판단을 철회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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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대통령 앞에 지도를 펼치고 러시아의 비밀 작전계획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북부에서 키이우를 맹습하고, 동부와 남부에서도 드네프르강, 흑해 연안으로 전면적인 공세에 나서는 것은 물론

스페츠나츠의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 작전, 점령 이후 괴뢰정권 수립 등 실제와 놀랍도록 유사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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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DNI의 에이브릴 헤인즈 국장이 이 작전계획이 실행될 것이라고 판단한 결정적 근거를 제시했다.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 정부, 군부, 첩보기관의 지도부부터 최전선 하위직까지 폭넓게 확보한 인적 정보, 그리고 인공위성 영상과 도청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결과,

 

푸틴은 팬데믹 중에도 군사작전 및 예비병력 예산을 증액해 왔으며, 21년 4월의 도발성 훈련과 차원이 다른 규모의 동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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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미 행정부 최고의 러시아통인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집착이 최근 들어 심해졌다"고 판단했다.

 

1. 69세의 푸틴은 러시아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자리를 굳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2. NATO, EU 가입 시도와 무관하게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의 서구화 경향이 그의 분노를 돋구었고,

3. 아프간 철수의 영향으로 미국이 전쟁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메르켈의 퇴임과 마크롱의 차기 대선 고전으로 유럽 세계가 흔들리며, 영국은 브렉시트의 여파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등 서방의 결속이 약화됐다고 보았다.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러시아가 해빙기가 시작되기 전 2월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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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첫째, 푸틴을 막기 위해 경고한다(CIA의 번스 국장 담당)

둘째, NATO 동맹국에게 대러 공동보조를 촉구한다(DNI의 헤인즈 국장 담당)

이 두 가지의 대응 원칙을 세웠다.

 

러시아는 가공할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어떻게 하면 3차대전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국제질서를 유지할까"가 미국의 과제였기에

 

확전을 피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차단하기 위한 위 네 가지 원칙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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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이루어졌다.

 

당시에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얼마 안 가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전면전에서 승리할 전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기보다는 점령 이후 저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저화력 무기를 지원하고, 스팅어나 재블린 등 게릴라전에 적합한 무기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진의 CSIS 시나리오에서 러시아군은 체르노빌을 우회하여 키이우로 진격하지만,

 

실제로는 방사능 오염으로 범벅이 된 땅에 병력을 그대로 들이미는 상식 파괴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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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침공 117일 전, 이탈리아 로마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게 최초의 경고가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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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침공 114일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기후변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 젤렌스키에게도 비보가 전해진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매우 마음 아픈 대화였다"고 말했지만,

 

젤렌스키는 "당신들이 참전할 것이 아니라면, 당신들이 전투기나 탱크를 지원해 줄 것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면서 반신반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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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러시아 모스크바

 

번스 CIA 국장은 모스크바에 방문했다.

 

번스 국장은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당신 생각을 다 알고 있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경고를 전달했다.

코로나를 피해 소치에 머물고 있던 푸틴은 늘 그랬듯 NATO가 러시아 안보에 주는 피해를 이야기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당성이 없다고 역설했다.

 

 

이날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정보를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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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침공 99일 전, 벨기에 브뤼셀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위원회에 참석한 에이브릴 헤인즈 DNI 국장은 30여 NATO 동맹국에게 미국의 정보 판단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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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그 정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영국과 발트3국만이 미국의 판단에 찬동했다.

 

이렇듯 미국을 불신하는 동맹국이 많았지만, 미국도 정보 유출을 우려했기에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 시점까지는 우크라이나 측의 반응도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에 이러한 대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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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미 국무부를 방문했다.

 

국무부 당국자가 커피를 내오면서

"너네 참호 파라!" 하자,

외무장관은

"농담이지?" 하고 웃었는데

 

당국자가 "아니 진짜다... 곧 전면적 침공이 있을 거니까 대비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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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침공 85일 전

 

블링컨 국무장관이 NATO 순방에 나섰다.

 

몇 달 사이 유럽 주둔 미군을 2만 6천 명 가까이 증강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둔 미군 사령부의 핫라인을 구축했으며,

 

2억 달러의 무기를 지원하는 등 미국이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하자 동맹국들도 납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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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침공 83일 전

 

워싱턴 포스트가 100개 대대, 17만 5천의 러시아군이 집결하고 우크라이나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를 내놓는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동향에 관련된 민감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하는데, "우크라이나가 자국군을 선제공격했다"는 등 침공의 구실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팀을 꾸리고 러시아의 선전을 반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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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침공 79일 전

 

바이든과 푸틴이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푸틴은 NATO의 확장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불평했고,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유보하고, 러시아가 민감해 할 동유럽의 미군 자산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하며 외교적 해결을 타진했다.(러시아의 타협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유화책이었다)

 

 

그러나 푸틴은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만 하며 회담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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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침공 45일 전, 스위스 제네바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의 회담이 열렸다.

미국 정부는 이날을 외교적 해결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었다.

 

러시아는 “97년 이후 NATO에 가입한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발트3국과의 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요구를 내놨고,

당연히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기에

 

 

미국은 “러시아가 외교적 해결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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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침공 43일 전, 우크라이나 키이우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젤렌스키와 만났다.

그는 젤렌스키에게 "곧 푸틴이 키이우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고, 키이우 외곽의 호스토멜 공항이 첫 표적이 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번스 국장이 초점을 맞춘 건 젤렌스키와 그 가족의 신변 위협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붕괴하지 않도록 정부를 미리 리비우나 폴란드로 철수하기를 바랐고, 젤렌스키가 본인과 가족에 대한 암살 계획을 알게 되면 결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키이우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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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침공 36일 전, 우크라이나 키이우

 

이번에는 블링컨 국무장관이 젤렌스키를 설득하러 갔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대통령인 내가 키이우를 포기하면 우크라이나의 그 누가 키이우를 지키겠는가?”라고 답하며 후퇴를 거듭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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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미국 워싱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고 밝히면서, 미국 정부의 침공 예측이 최초로 공식화된다.

 

만약 침공이 이루어진다면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강경한 경고도 덧붙였는데, 한편으로는 ‘소규모 침공이라면 대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족을 달아서 메시지를 희석했다.

 

러시아를 도발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지만, 이 말에 젤렌스키가 “강대국에게는 ‘소규모 침공’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없다”고 발끈하면서 서방 진영, 그리고 미-우크라이나 사이의 의견 차이를 확인하는 결과만 낳았다.

 

미국은 침공 6일 전까지 침공 관련 세부정보를 유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러시아 간첩들 때문에 미측의 정보원이 노출되거나, 러시아 병력이나 무기의 배치 정보를 제공하면 우크라이나가 선제 공격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자 일반 시민부터 국회의원까지 상당히 많은 간첩들이 발견, 검거되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도 (대외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공식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키이우 수비 계획 등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공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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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침공 34일 전, 스위스 제네바

 

미-러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고, 마침내 둘만 남은 자리에서 블링컨이 날선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NATO의 확장이 문제인 거요, 아니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자기 땅이라고 여기는 게 문제인 거요?

 

라브로프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회담장을 걸어 나갔고,

 

이 회담은 미-러의 마지막 고위급 접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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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침공 32일 전, 영국 런던

 

1월 말이 되자 영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즈 트러스 당시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괴뢰 정권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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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침공 13일 전, 러시아 모스크바

 

이어서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만났는데,

 

이 때 쇼이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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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침공 12일 전

 

바이든과 푸틴이 전화 통화를 했다.

 

 

바이든은 푸틴에게 “미국은 끝까지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지만, 다른 시나리오에도 완전히 준비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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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침공 7일 전

 

이제 전쟁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리우폴을 방문해 러시아를 겨냥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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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침공 6일 전, 미국 워싱턴

 

우크라이나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이 방미했다.

 

미 국무부는 이제 더 이상 정보 제공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어느 공항에 있는 공수부대와 수송기 몇 대는 우크라이나의 어느 지점에 투입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등 세부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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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바이든은 최종 판단을 내렸다.

 

그는 동맹국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푸틴이 침공을 결심한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했고,

이어서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에게도 공개했다.

 

 

이날 바이든이 접촉한 정상들 중에는 한국과 일본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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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침공 5일 전, 독일 뮌헨

 

프랑스와 독일은 연례 뮌헨안보회의에서 최후의 외교적 해법을 찾고자 했다.

젤렌스키도 뮌헨에서 연설하고 오후 늦게 키이우에 복귀했는데, 미국과 영국은 젤렌스키의 공백이 침공의 호기가 될까 극도로 우려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정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면 젤렌스키가 참석했겠느냐’면서 미국과 영국을 면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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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침공 4일 전

 

마크롱과 푸틴의 통화가 이루어졌다.

 

마크롱은 푸틴에게 “수일 내로 제네바에서 바이든과 담판을 지어라”고 권고했고,

푸틴은 “고려할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결정하기 전에 알려주겠다”면서도 “내가 지금 아이스하키장에 있으니 끊어야겠다”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푸틴의 마지막 말은 “Merci, Président!(고맙소, 대통령!)”이었다.

 

 

푸틴과의 통화는 그대로 녹취되어 프랑스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도됐는데,

통화 직후 마크롱과 보좌진들은 “돌파구를 마련했다”면서 웃고 춤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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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침공 2일 전

 

마크롱의 환호가 무색하게 푸틴은 돈바스 공화국(도네츠크, 루한스크)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한적 침공을 개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 방면에서 키이우를 향한 전면적 침공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이 판단에 못을 박듯, 벨라루스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의 통화에서 “벨라루스 영토 내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없다”면서

"군인 대 군인으로 공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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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침공 1일 전

 

침공 전날 초저녁,

미국이 러시아의 병력 이동 첩보를 접수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미 침공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고,

예르막은 “젤렌스키와 바이든이 통화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설리번은 퇴근해서 관저에 머무르던 바이든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고, 젤렌스키도 바이든의 전화를 받았다.

 

무엇을 도와야 하겠느냐는 바이든의 질문에 젤렌스키는 “당장 모든 정보를 달라. 푸틴이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상에게 연락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약 12시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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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오전 4시 15분경, 러시아는 국경 세 곳에서 침공을 개시했다.

 

4시 50분에는 푸틴의 ‘특별군사작전’ 선포 연설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20분 뒤 키이우에 대한 공습이 이뤄지며 ‘키이우 전투’가 시작되었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13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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