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기독교 인구 비율이 낮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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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기독교 인구 비율은 통계에 따라 편차 는 있지만 5%에서 10%선으로 잡히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의 기독교 인구 비율인 20%보다 확연히 낮은 숫자 이다.

그렇다면 왜 제주도가 유독 기독교 인구 비율이 낮은 것 일까?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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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 탓이 제일 크다.

이 집단의 이름은 '서북청년 회'

아마 4.3에 대 한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조금이라도 접하셨다면

이들의 이름을 많이 접해보았을 것 이다.

서북청년 단은 대 부분 북한 지역 에서 내려온 실향민들로

이들의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소련은 해방 이후 기독교 신자들에 대 해 강도 높은 탄압을 가해왔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위해 자본가로 분류된 이들을 대 규모로 숙청하였다.

결국 이들은 공산당에 대 한 강력한 증오를 안 고 월남하였고,

한 교회가 이들을 모아 '서북청년 회'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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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교회, 영락교회 되시겠다.

반공과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이들은 초대  대 통령 이승만과 미군이 정말 활용하기 좋은 인재였다.

그리고 '좌익이 날뛴다'고 판 단하는 곳에 이들을 보내어 그곳의 좌익 색출 임무를 맡기곤 했다.

1948년 ...그들에게 또 다시 '좌익이 날뛴다'는 곳을 정리 하라는 지령이 떨어지고,

그들이 향한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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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주도였다. 

만약 그들이 일반적인 전투처럼 남로당과의 전투만 진행했다면, 그저 평범한 반공단체 정도로 기록되었을 것 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주도에서 벌인 일은, 과연 그들이 어떤 예수를 믿고 있었는지 의심가는 행동 들뿐이었다.


"이승만과 미군의 후원 아래 제주 사태의 최일선에 서게 된 서북청년 회는 군‧경 모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중산간마을인 애월면 광령리 주민이던 고치돈 은 하귀리 개수동 으로 소개했다가 그곳에서의 무차 별 총살에 놀라 다시 제주읍 외도리로 소개했다. 고치돈 은 외도리 민보단장이 처가 쪽 친척이라 그의 배경으로 양민증도 비교적 빨리 얻었고, 특공대 에 편입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치돈 은 특공대  시절  목격했던 서북청년 회 출신 경찰들의 잔혹했던 행동 에 대 해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외도지서 특공대  생활을 할 때 서북청년 단 출신 경찰 이윤도(李允道)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 로 걷지도 못 할 지경이 됐지요.

이윤도는 특공대 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 가 더 많았지요. 여자 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 고 있는 사람 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271쪽.


그들은 민간인마저도 '동 조자'로 몰아가며 대 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심지어는 피해를 당한 집안 의 여성 들을 협박하여 억 지로 결혼 해서 데리고 사는 경우까지 벌어졌다.

결국 그들은 폭력을 피해 왔으면서 누군가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 이다.


위에서 이들의 대 다수가 '영락교회' 신도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영락교회의 담임목사가 누구였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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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을 세우고 평양에서 폐교된 숭실대 학교 를 서울 에 재건하는 데 기여한

한경직 목사였다.

그는 1992년 ,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본인의 신사참배 사실을 참회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4.3의 학살에 대 해서도 그는 참회하지 않았을까?

안 타깝게도, 지금 남아 있는 그의 생전 발언을 보면 아니었던 듯  하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 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 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 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 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 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 김병희 편저, 『한경직 목사』, 규장문화 사, 1982.


그리고 영락교회로 돌아간 서북청년 단 중에는 목사, 장로, 집사가 다수 배출되었고,

당연히 그들이 4.3에 대 해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 일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2018년 , 그러니까 4.3사건 70년 이 지난 때에서야, 진보 성향의 교단들이 모인 단체인 NCCK(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가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것 이 전부다.

'진보 성향의 교단'이 모였다는 것 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영락교회는 저 단체와 무관하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에서 제주도의 복음화율이 떨어진다며 제주도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인력을 파견한다.

그러나, 모두가 예수님 의 말씀을 잊고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마태복음 5장 2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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