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로 수도를 옮기고자 했던 일본.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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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김시덕 박사의 도시이야기 발췌
일본제국은 만주국이 설립된지 10년이 지나 안정화를 찾고,
조선을 병합한지 30년이 지났을 무렵 천도를 계획한다.
지진이 잦은 간토지방의 도쿄는 태생적으로 불안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진출에 대한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대륙진출과 천도가 무슨 관계일까?
한일합방 이전 시절에는 일본 열도의 양대축이 도쿄와 교토였다.
그러나 조선을 식민지하면서 일본제국의 영토가 서쪽으로
넓어졌고 행정의 축도 서쪽으로 옮겨갈 필요가 생겼다.
현재 서울-수색, 인천-부평, 부산-가야, 평양에 설치된 대규모
철도 조차장도 시베리아까지 물류 이동을 염두에 둔 일제의 흔적이다.
1960년대 초반 당시 건설부 도로과장이었던 이헌경 씨의 말에 따르면
일제는 1944년 '중앙계획 소안요강안'이란 비밀 국토계획을 작성했는데
수도 이전 후보지로 세 곳을 꼽았으며 그 중 하나가 서울 교외였다.
현재 위치로는 한국외대 용인 캠퍼스가 위치한 용인시 모현읍 일대와
광주시 오포읍 평야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헌경 씨는 해방 직후 도로과 서류함에 당시 그 일대 측량도면까지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국토의 중앙으로 군사 물자 운송에 최적화된 위치인데다가
지진이 없는 땅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들은 간토 대지진 때
도쿄의 1/3이 날아간 경험이 있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할 당시에는 조선을 병합한지 30년이란 세월이 지난 시기로
이미 한 세대나 지난 시점이었다. 즉 일제에 조선반도는 자기네 나라였다.
일본 열도의 일본인 200만을 한반도에 이주하고자 했다.
1945년 만약 일제가 이겼으면 일제 수도는 용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조선반도의 원래 주인이던 조선인은 만주로 쫓겨났을 것이 뻔하다.
PS. 6.25 전쟁 당시 전선이 부산까지 밀리자 미국은 대한민국 임시수도를
오사카로 옮기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나 일본 열도나
모두 미국 맥아더가 관할하는 G.H.Q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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