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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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4270?sid=102
[이태원 참사] "이제 고생 안 하고 행복하게 살자" 새집 사주고 떠난 아들
지난 30일 정오께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아들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전화금융사기인 줄로만 알았다.
꿈이면 좋겠다 연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서울에 도착했지만, 병원에서 마주한 아들은 굳게 닫힌 눈을 뜰 줄 몰랐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본 건 지난 추석, 아들이 선물한 아파트에 입주한 지 2∼3일째 되던 날이었다.
(중략)
고등학교 3학년 때 쌍둥이 형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들이 형에게 두 번의 골수이식을 해줬지만, 형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병원비를 충당하느라 쌓인 빚더미에 나앉은 가족은 처참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형 대신 꼭 성공하겠다. 20년 후에는 우리 어머니 고생 안 시키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로스쿨에 진학했고, 서울로 취업한 지 11년 만에 낡은 주택에서 살던 부모에게 새 아파트를 선물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3644?sid=102
[이태원 참사] 유일한 베트남 희생자 빈소…친구들이 상주로
2년 전 한국에 홀로 입국해 국내 한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A씨는 사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함께 간 친구는 간신히 참변을 피했지만, A씨는 끝내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들은 A씨에 대해 너무 착한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A씨의 지인은 "프리랜서 모델도 하고 친구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끼가 정말 많은 친구였다"며 "처음에는 뉴스에 피해자 국적이 전혀 안 나와서 몰랐다가 뒤늦게 사망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응우옌 마이 안(52)씨는 "우리 식당에 하루 3번 올 정도로 단골이라 딸처럼 예뻐했다"며 "영어도 잘해서 외국인 손님이 오면 자기가 대신 나서서 통역도 해주는 등 늘 밝고 싹싹했다"고 떠올렸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3592?sid=102
[이태원 참사]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주검으로 돌아온 스무살 딸
고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이 생겨 대학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해서 서울에서 패션디자인 공부를 했던 딸이다.
아르바이트하며 사업 자금을 모아 올해부터 본인의 목표였던 의류 쇼핑몰을 시작했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본인 손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딸애가 혼자서 모델도 되고 사진도 직접 찍어가며 쇼핑몰을 운영했어요."
친구들도 A씨를 꿈이 많던 친구로 기억한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은 친구였어요. 저희한테 언젠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 자주 말하곤 했는데, 한다면 하는 친구라서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친구로서 뿌듯했어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3178?sid=102
[이태원 참사] 타향살이 딸들 눈 감은 채 부모 곁으로(종합)
꿈을 가지고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학교에 다녔던 딸은 올해 6월 서울로 취업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막둥이 딸은 항상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밥은 어떤 걸 먹었는지 모든 이야기를 아빠, 엄마에게 전했다.
일하느라 바빴지만 틈이 생기면 사진을 찍어 보내고 카톡으로 장난도 많이 쳤다.
그만 끊자는 아버지의 말에도 "아빠 또 끊으려고 하네"라며 통화를 더 하자고 애교를 부리던 귀여운 막둥이였다.
평소 활달한 성격이었던 딸 아이가 이날 분장을 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사고 발생 1주일 전, 고향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갔을 때도 별 탈 없었으니 이번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날 이태원에 직장 동료 7명과 함께 간 딸은 동료 3명과 참변을 당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3094?sid=102
[이태원 참사] "꿈에 그리던 직장 취업, 축하 턱 내러 나갔다가..."
31일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아들의 빈소를 차린 아버지는 "든든한 기둥 같은 장남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 김모(28)씨는 이틀 전 이태원 참사에서 유명을 달리한 청년 중 한 명이다.
동행한 친구는 신발 한 짝을 잃고 무릎에 찰과상만 입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인파에 휩쓸린 김씨는 참사 현장에서 주검으로 수습됐다.
가족들은 뉴스로 처음 이태원 소식을 접했을 때 평소 북적이는 번화가를 좋아하지 않았던 김씨와는 상관없는 사고일 것이라고 여겼다.
오후 11시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었던 전화가 신호음만 울리고 끊기기를 반복하자 가족들은 밤을 꼬박 지새웠다.
수십번 시도 만에 사고 이튿날 오전 6시께 첫 통화가 이뤄졌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사고 현장에서 습득한 휴대전화가 서울 용산서에 있다고 안내했다.
(중략)
참사 현장에서 멀지 않은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김씨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김씨는 잠을 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2904?sid=103
[이태원 참사] "남 챙기기 바빴던 내 동생, 간호사 꿈 어쩌나" 오열
31일 오전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 A(28)씨 빈소가 차려진 부산 사상구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 오빠 B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두 살 아래 여동생인 A씨는 부산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며 올해 3월 전남지역 한 대학에 있는 간호학과로 진학했다고 한다.
B씨는 "평소 헌신적인 성격으로, 본인 앞가림은 제대로 못 하면서도 남을 챙겨주느라 항상 바빴다"며 동생의 평소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으면 집에 있는 빵이나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며 챙기기도 했다"면서 "그런 헌신적인 성향 때문인지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도 더 전문성이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A씨는 최근 대학 중간고사를 끝낸 뒤 간호조무사 때부터 함께 일하다가 간호사가 되려고 같은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한 친구와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 피해자가 됐다.
A씨 친구는 사고 당일 심폐소생술을 받아 의식을 되찾았지만, 병원에 이송돼 치료받다가 끝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중략)
A씨 가족들은 "지난 29일 오후 사고가 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던 터라 더 죄책감이 크고 미안하다"며 "얼마나 고통스럽게 마지막을 맞았을지 상상이 안 된다"고 오열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2591?sid=102
[이태원 참사] "서울로 이사가 좋아했는데"…딸 잃은 엄마 오열
조문객 없이 한산한 분위기의 빈소에서는 자리를 지킨 유족들의 울음소리만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한순간에 딸을 잃은 어머니는 연신 "어떡해"라고 절규하며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옆에 선 다른 친척들도 눈물로 붉게 부은 눈시울을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20대 A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상경해 인천에서 살던 그는 최근에야 회사와 가까운 서울로 이사를 했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년쯤 됐을 때였다.
2주 전께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선뜻 부산에 내려간 그의 모습이 가족들에겐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1549?sid=102
[이태원 참사] 생일 맞은 아들·취업해 상경한 딸…애끊는 사연들
1. 30일 경기 용인 평온의숲 장례식장에는 이날 생일을 맞은 20대 직장인 A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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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서는 군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이태원에서 변을 당한 막내아들 B씨의 사연이 전해졌다.
B씨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이날 오전에 확인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는 참사 소식을 접하고 밤새 아들에게 애타게 연락했지만,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A씨는 참사 2시간여 전인 전날 오후 8시 30분에도 군 상관에게 유선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중략)
3. 희생자 중에는 결혼한 첫째 언니를 대신해 가족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한 착한 딸도 있었다.
네 딸 가운데 둘째 딸 C씨를 잃은 어머니는 서울 등지의 병원을 헤매다가 경찰로부터 사망자 명단에 C씨가 포함됐다는 연락을 받자 주저앉아 오열했다.
C씨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면서 몸이 아픈 어머니를 돌보고 두 동생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중략)
4. 항상 웃고 밝았던 첫째 딸인 D씨는 올해 2월 입사 시험에 합격해 혼자 서울로 온 후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공부를 이어왔다.
최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단짝과 이태원 놀러 간다는 말에 부모는 "갔다 와. 다녀와서 면접 준비해"라며 흔쾌히 승낙했지만, 그게 딸 아이와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휴대전화 앨범에 저장된 딸 아이 사진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하던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예뻐요. 꽃다운 나이잖아요. 아직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하고…"라며 "아직 아이 마지막 모습을 못 봤어요. 보면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지금도 못 보겠어"라고 울먹였다.
함께 이태원을 갔던 D씨 친구의 빈소도 이날 자정께 광주의 장례식장에 나란히 마련될 예정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1509?sid=102
[이태원 참사] "누님한테 정말 잘한 조카인데…" 유족들 눈물(종합)
30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동국대병원 장례식장 밖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담배를 피우던 A씨는 기자의 질문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조카 B씨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개인위생에 철저했고, 친구들 모임에도 잘 안 갔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주말을 맞아 조카와 조카의 여자 친구, 또 다른 친구들과 모처럼 어제 이태원을 간 것 같다"면서 "새벽에 조카 친구들이 누나 집에 와 B씨와 연락이 안 돼 새벽까지 찾다, 못 찾아 집으로 찾아오게 됐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날 이른 새벽부터 불길함 속에 TV로 이태원 참사 뉴스를 보고 있던 A씨는 오전 10시가 넘어 경찰로부터 조카가 있는 병원을 확인한 뒤 한달음에 이곳에 도착했다.
A씨는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조카의 여자친구도 혼수상태였다가 지금 간신히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조카만 의지하고 살던 누나도 그렇고,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우리 조카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말을 이었다.
젊은이의 죽음은 사회 전체에 상흔을 남긴다.
사연 하나씩을 더 살필 때마다 참담함이 켜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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