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화산華山에는 매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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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본 파의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천하에 누가 그것을 모를까.”
장붕은 온몸에 붉은 피칠갑을 한 채 망연히 자신의 사형 장천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왜 매화에 목을 매시는 겁니까.”
“모든 화산의 검수劍手들이 꿈꾸는 경지가 아니더냐. 검에서 매화를 피워내는 것 말이다.”
그 말에 장붕의 주위를 포진한 매화 검수들이 침묵으로 동조했다.
애초에, 그들은 자신의 검으로 매화를 피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감내할 무인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화산이 기울고 있는 것이겠지.
장붕은 소리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매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니라니, 무엇이? 아버지의 동정심으로 거둬진 놈이 화산의 매화를 부정하는 것이냐.”
매화梅花란.
한없이 고고한 자태로 세상을 관망하는 신선의 꽃이다.
모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어 피어나는 절개의 꽃이다.
장천의 매화는, 화산은 그러한 의미였다.
그가 매화를 닮은 화산의 검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무武로서 매화를 피운다는 것을 최고로 삼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게 행했다.
작금의 화산이 그러하였다.
영특하지 못한 장붕은 죽을 자리에 올라서야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화산은 잘못된 길을 걷는 중입니다. 어찌 그걸 모르십니까?”
“꽃은 봉우리를 피워내야만 꽃이고, 마땅히 피어난 봉우리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향해야 씨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우둔한 것아.”
“화산을 희생해가며 올라탈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안다고 저렇게 입방아를 찧어대는 건지. 장천은 가볍게 혀를 찼다.
장붕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다.
격동하는 세계에선 빠르게 정세의 흐름이 변하고, 무림의 기세가 변한다.
변화의 바람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화산 또한 도태될 뿐이었다.
“허, 가당찮은 소리로 목숨을 연명하려 드는구나.”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장천이 손을 저었다.
손짓과 함께 주변의 검수들로부터 매화검진梅花劍陣이 펼쳐진다.
제 시간에 지혈을 하지 못한 장붕의 안색은 시체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런 장붕에게 무자비한 검초劍楚가 날아든다.
진득하게 조여오는 압박감 속에서, 장붕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화산의 아이가 화산의 검으로 부모를 잃었습니다.”
장붕은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매화인동梅花忍冬.
목을 노리는 서늘한 검날을 막아낸다.
“화산에서 나고 자란 청년의 아내가 한낱 재가 되어 허공에 날렸습니다. 민초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고 버틸 뿐입니다.”
두 걸음.
매화점개梅畫漸開.
매화의 빛을 띤 검을 자연스레 흘린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고, 이따금 들려오는 희미한 곡소리만이 화산에 울려 퍼질 뿐입니다.”
세 걸음.
매화난만梅花爛漫
이윽고, 검진을 파把한다.
“장로들은 무력武力만을 추구하여, 지금의 화산에는 화花의 냄새가 아닌 화火의 냄새만이 남았습니다.”
오롯이 홀로 땅을 딛고 선 장붕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당신들에게 매화란 무엇입니까.”
“…….”
장붕은 깨달았다. 꽃이 지고 나서야, 그것이 조그맣게 약동하는 생명이었음을.
“평화롭게 저잣거리를 노니는 어린아이에게서, 저는 꽃을 보았습니다.”
일一 검.
화산을 천진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의 웃음을 담는다.
“화산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피우는 객잔 안에서, 저는 꽃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二 검.
화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추억을 검에 담는다.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지킨 이 땅에서, 저는 뿌리의 단단함을 느꼈습니다.”
삼三 검.
화산을 지킨 선조들의 피와 절개를 검에 담는다.
“그렇기에, 꽃내음으로 가득 찬 화산花山이라는 겁니다.”
매화가 없는 화산華山이, 이따금 화산花山이라 불렸던 이유를, 장붕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장붕이 느릿하게 펼친 손에서 꽃의 봉우리가 맺히고.
아득한 향香이 퍼진다.
일 리 안의 장천과 검수들에게.
십 리 안의 일개 무인들에게.
백 리 안의 화산으로.
이윽고, 천 리를 넘어.
만 리를 아우르는 무림에.
“이것이, 저의 꽃입니다. 화산花山의 검입니다.”
움츠렸던 봉우리가 기지개를 켜며 만개한다.
그리하여 펼쳐진 일 초楚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천하天下에, 매화가 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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