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쓴 휴일 카페에서 써보는 우울증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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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제가 우울증의 늪으로부터 헤엄쳐서 나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짧은 글이 제가 겪던 고통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진심으로 좋겠습니다.

 

 

1. 서론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던 모범생이었습니다.

살면서 부모님께 한 번 크게 대든 적도 없고 어딜 가나 칭찬 들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살았습니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을 따라가려고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삶이 제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5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병신, 저능아, 죽어'라고 스스로를 욕했습니다.

계속되는 자기착취와 자기혐오 속에서 제가 바라던 건 '기계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라건대 이 힘듦을 느끼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하는 일이 완벽하게 끝나도록 해주세요'

 

매일 비현실적인 것을 기대하면서 막상 현실로 이뤄내지 못하면 자신을 잘근잘근 밟고 씹었습니다.

이것도 못 하면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나약하고 한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올해 봄에 잠들기 전 '이렇게 자다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욕하는 걸 넘어 자살까지 생각하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 틱 마냥 '죽고 싶다'가 입버릇처럼 붙게 됐고 나같이 한심한 인간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생각은 점점 살과 뼈가 붙으며 구체적인 계획이 됐고 직접 도구를 검색하고 찾아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2. 본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던 올해 5월, 잔뜩 구름 낀 머리를 이끌고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 과호흡이 왔습니다.

통제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양손이 벌벌 떨리면서 호흡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가로수를 붙잡고 진정한 뒤에야 '병원에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과병원’. 나약한 사람이나 오는 곳이라 치부하던 곳에 스스로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사실에 실소가 나왔습니다.

현재 상황과 증상들을 정리해 둔 서류 봉투 속 종이를 의사 앞에서 PT발표하듯 쏟아냈습니다.

(증상: 빈번한 자살 충동, 무기력함, 심한 졸림, 불면증, 잦은 두통)

 

의사 선생님은 미소와 함께 가만히 들어주시며 키보드에 따라 적으셨습니다.

이후 약 8개의 검사를 거쳐 ‘중증 우울증 및 불안장애’ 진단받았습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인지행동치료 전문 심리상담소를 찾아 심리상담도 신청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3개월간 정신과와 심리상담소를 방문해서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복용하고 있는 약은 '유니작' 20mg입니다. (현재는 상태가 호전돼 10mg으로 줄었습니다.)

정신과는 진료비 5,000원 + 약 4,500원으로 내방할 때마다 약 10,000원 입니다.

심리상담은 회기당 80,000원을 내고 있습니다.

 

정신과는 10~15분 정도의 짧은 상담과 함께 처방이 이뤄집니다.

보통 제가 겪는 증상 위주로 설명해 드리면, 의사선생님께서 여러 조언을 해주십니다.

조언과 함께 제가 한 주간 하면 좋을 퀘스트(?)도 함께 주십니다.

 

심리상담은 50~55분 정도 이뤄집니다.

한 주간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면 나뭇가지→기둥→뿌리로 가듯 결국 제 마음 깊은 곳과 연관된 얘기에 닿습니다.

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갖고 있던 잘못된 관념이 논박을 통해 부서집니다.

 

 

3개월 치료한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입니다.

크게 변한 것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고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지금 무슨 감정인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하 는지 잘 몰랐습니다.)

 

2. 다른 사람의 시선에 조금 초연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누가 뭐라든 그건 그 사람 생각이지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3. 완벽한 것은 없다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지나친 완벽주의에서 제 한계를 인정하고 세상에 완벽함이란 건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제가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대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3. 결론

 

세상의 시선은 단 1초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이곳저곳에서 안 좋은 소식만 들리며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는 더더욱 자신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설득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과정은 다소 부끄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잠깐 바뀐 듯 싶다가도 작은 외부 사건에 힘없이 관습으로 돌아갈 때도 많습니다.

 

세상은 변화한 ‘나’를 정신 승리 라던지 나약한 사람이라든지 여러 수식어를 덧붙여 깎아내리겠지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롭게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느 정도의 각오와 용기를 품에 안고 내적 평화를 얻은 것인지 외부인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정답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 저마다의 정답을 갖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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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치료기간 중 읽은 책

 

1. 오은영 <화해>

2.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3. 네모토 히로유키 <나를 내려놓으니 내가 좋아졌다>

4.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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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완벽주의 때문에 자기착취하고 자기혐오하다가 우울증 옴.

2. 정신과랑 심리상담 받기 시작함.

3.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니 우울증에서 나올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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