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 누나가 이태원에서 돌아가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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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없고 학업도 안 하고 있는 스무살 중반 개붕인데
머릿속에 정장도 없는데 장례식장에 뭘 입고 가야 할지 나 떠오르네
와이셔츠나 블레이저도 없고 검은색 맨투맨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검은 슬랙스에 검은 후드티, 회색 맨투맨, 검은 항공점퍼 따위뿐이네
그냥 슬랙스에 회색 맨투맨 검은 항공점퍼 입어도 될까?
이 밑은 그냥 누나에 대한 이야기야.
엄마 말로는 전남편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엄마가 좀 칭얼거렸다고 바디 블로우를 날리는 사람이었나 봐.
엄마는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는데 이미 식도 잡혀있는 마당이라 그런지 할머니는 그냥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네.
결국 결혼은 성사되었고 시간이 지나 누나가 갓난 아기였을 때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서 엄마는 이혼을 요구했어.
그 순간 남편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엄마는 누나도 못 챙겨서 도망 나왔고 그 길로 누나랑 찢어지게 되었데.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엄마는 성인이 된 누나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때 누나가 자주 방문하면서 누나랑 친해지게 되었어.
그러다 누나는 엄마에게 다시 상처받을 일이 생겼버렸어.
그 뒤로 엄마와 누나의 사이는 처음만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고 더 이상 찾아오는 일이 없었어.
내가 중학생 때쯤 한 번은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엄마랑 누나랑 통화하다가 감정이 격해졌나 봐.
근데 전후사정도 모르는 나란 새끼가
엄마가 혼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엄마! 쪽팔리게 왜그래! 전화 끊어! 소리쳤어.
누나는 00이 쪽팔리다는데 이만 전화 끊자 하고 전화를 끊었데.
내가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누나는 어려서부터 새엄마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전해 들었어.
그리고 엄마 곁을 조심스럽게 찾아왔는데, 엄마에게까지 상처를 받은 거야. 그리고 나에게도.
누나가 참 불쌍해.
불과 올해 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누나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라고.
난 10년이 넘도록 연락 한번 못한 사이인데도 눈물이 날 거 같았어.
이제는 누나가 무슨 일을 겪었었는지도 알았고.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누나에게 연락해서 한참 동생이지만 이런저런 말들을 해드리고 싶었어.
나중에 꼭 만나 술 한잔 하면서 누나 정말 힘들었지 한마디 해드리고 싶었어.
몇개월 전에는 엄마도 누나를 보고 싶었나 봐.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걸 떼서 집 주소를 알아내셨어
참 웃긴게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고 계시더라?
그리고 곧 찾아갈 거라고 말씀은 하셨는데 막상 가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으셨나 봐. 미안한 마음이 컸나 봐. 내 생각에는.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서 오늘, 그러니까 어제 늦은 저녁에 엄마가 울며 전화를 하더라. 누나가 이태원에서 죽었다고.
엉엉 우시는데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듣고만 있었던 거 같아.
내일 엄마랑 같이 찾아가기로 했어.
내가 초등학생 때
사진과에 재학 중이던 누나는
지하철 칸 사이 공간에서
나에게 포즈를 취해보라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주던 기억난다.
부끄러움 없을 나이였던 나도 온갖 똥폼을 잡으며 포즈를 취했고
누나는 내가 사진발이 너무 잘 받는 다며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칭찬을 해줬어.
에픽하이 팬이었던 누나는 에픽하이 노래들을 나에게 엄청 들려줬었고
나도 에픽하이 팬이 되었던 기억이 떠오르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끔 희망적인 가사의 에픽하이 노래를 들으면
누나도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곤 했었는데 ㅋㅋ
너무 허망하다. 씨발 그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왜 누나가 일까 싶은 못된 생각도 들어
잘난 건 하나 없지만 나 이렇게 생겼다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누나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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