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용사가 아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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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첫날 내려온 계시는?"
"창 밖에서 편지 하나 날리는 게 그리 어렵나?"
"나 용사라고 끌고 다니는 파티원들은?"
"각자 사연이 있더라. 이해해줬으면 좋겠대."
"...그러면 다른 용사에 대한 소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소문을 쫙쫙 퍼트리면서 돌아다니는데?"
"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용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여기저기 막 소문을 내고 그러겠냐? 열심히 숨겨서 키우다가 마왕 모가지만 뎅겅 썰어버리면 되지."
"..."
저 녀석 손에 든 게 거짓말 탐지기만 아니었으면 들어줄 가치도 없었을 텐데.
마음이 흔들린다.
"너도 솔직히 의심하고 있지 않아? 너의 능력이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는 거."
"...이런 씨발."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다.
다 알만한 놈이 말을 왜 저리 할까.
욕을 먹고도 싱글벙글한 저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
"운 뭐시기 자라고? 운이 조금 좋다고 세상일이 좋게 돌아갈 리가 없잖아."
"이 개새끼야!"
휘어진 눈초리, 엷게 호선을 그리는 입술.
참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내 손이 그대로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원체 하얀 얼굴이기에, 붉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커윽... 넌 그냥... 소시민이... 켁... 어울려..."
"닥쳐... 닥쳐!!!"
붙잡은 목을 그대로 들어 집어던졌다.
손이 덜덜 떨린다.
"내가 용사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면서... 언제나 날 응원하겠다고 했으면서!!!"
속이 뒤집힌다.
역하다.
뭐가?
"내가 숨겨줄 수 있어."
"...뭐?"
숨겨줘? 날?
왜?
"마왕은 용사가 알아서 잡아 줄 거야."
"뭔 개소리냐고."
"너, 나 좋아하잖아?"
숨이 턱하고 막힌다.
"...언제부터 알았어?"
"그건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를 달짝지근한 향기가 집중을 흐린다.
그녀가 처음 보는 요염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도 네가 좋다는 거야."
쿵.
"같이 조용히 살자. 집도, 돈도 다 준비 해뒀어. 너만 괜찮다면..."
완전히 다가온 그녀는 내 귓가에 마지막 한마디를 속삭였다.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몸을 움직여줄 뇌는 이미 생각을 멈춘 상태.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불여시같은 년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뭐, 다 알렌이 너무 착하고 잘생겨서 그런 거겠지만.
이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알렌은 내거니까.
툴팁을 최대한 가려두길 잘한 것 같다.
"히히..."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운명을 조종하는 자를, 운이 좋은 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자신이 여태 벌여온 일들이 그저 운이 좋았다 정도로 생각한 걸까.
너무도 순수하다.
이미 눈이 감긴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 따스함.
이 부드러운 감촉.
이 향기로운 냄새.
...나만의 알렌.
"이젠 걱정할 거 없어."
듣지 못하겠지만, 그에게 속삭였다.
마왕?
그런 걸 걱정할 이유도 없다.
왜냐고?
그야,
내가 마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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