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첫 거부감을 느꼈던 일(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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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갓 군대를 전역했던 내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한창 알바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국 어느 매장에서건 남자 알바생들만 도맡아 하게 되는 업무 2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먼저 설명할 튀김기 청소.
패스트푸드점의 꽃은 튀김이다.
감자튀김, 너겟, 치킨패티 등등
물론 쟤네들을 튀기기 위한 튀김기가 있고, 당연 매일매일 청소를 해야한다.
이렇게 생긴 애들이다.
튀김기 청소는 어떻게하느냐?
저 칸에 있는 기름을 잠시 비워두고 상체를 집어넣은채 바닥면, 옆면의 그을음을 약품과 전용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면 된다.
청소 중인 칸의 양 옆으로는 180도 고온의 기름에 여전히 튀김을 튀기고 있기 때문에 더위는 말할 것도 없다. 간간히 튀어오르는 기름기, 튀김기가 내뿜는 열기... 물론 보호장구를 착용하지만 혹시라도 기계가 맛탱이가 가버린다면 제 아무도 화상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2시간여 가량 청소를 끝내고 나면 몸은 기름쩐내와 땀에 쩌들게된다.
그럼 남은 한 가지 업무는 뭘까?
예상했겠지만 바로 자재하차다.
주 2회 덤프트럭으로 미리 신청한 자재들이 도착한다.
매장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매장은 남자 알바생 2명이서 2시간 동안 자재를 내리고 창고와 냉장고, 냉동고에 선입선출 형식으로 정리했다.
내리는 자재들은 15키로가 넘어가는 시럽원액, 박스 당 10키로는 거뜬히 넘어가는 냉동패티류, 박스 당 15키로가 넘어가는 냉동감자튀김 등이 주를 이룬다.
여름에는 야외에서 더워죽고, 겨울에는 냉동고에서 얼어죽을 것 같았다.
비가 오는 걸 대비해 준비 된 우비는 없었다.
그저 배달라이더용 겨울자켓으로 대충 상체만 비에 젖지 않게 하는게 최선이었다.
어쩌다보니 서론이 길었다.
그 날은 한여름의 장마철이었다.
나는 튀김기청소를, 다른 남자 알바생들은 장맛비를 맞으며 자재를 내리는 중이었다.
힘들어도 자신이 맡은 일이니 다들 별 불만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날따라 하필 카운터에는 여자 알바생들만 배치됐었고 폭우 때문에 매장은 한가했다.
물론 비가 와서 손님이 없으니 카운터에 배치 된 여자 알바생들이 구석에 모여 에어컨 바람을 쐬며 하하호호 수다를 떠는게 전혀 나쁜 일은 아니다.
여자 알바생 대신 남자 알바생들이 카운터에 있었어도 분명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얘기의 주제는 은근 내 신경을 건드렸다.
한국에서의 여성인권 차별받는 여성의 삶
자세히 설명은 안 해도 어떠한 얘기일지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는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며느리를 남편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정도로 생각하는 시어머니들이 많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한여름에 튀김기 청소를 하고, 비를 맞으며 자재하차를 하고있는 남자 알바생들의 심정을 생각해봤을까 싶다.
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 날은 그들에게 유독 거리감을 느꼈다.
그 수다내용들이 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남자이기에 군대를 가고, 매장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날 만큼은 일을 하며 잡다한 생각이 꽤나 많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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