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에 기록된 대 식가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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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끼에 먹어치우니 큰 문제다"라고 기술했다. >
이극돈 : 사람 이 혼자 도대 체 쌀 몇섬을 먹어제 끼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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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에서는 "가난한자는 빚을 내서라도 실컷 먹어대 고 >
군사들은 행군시 군량만 짐의 반을 이상을 차 지하며 옷을 버려도 쌀을 챙기고 >
행군중에도 관료들은 수시로 모여 술과 음식 들을 먹어치웠다"라고 기록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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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 사신으로 간 이정구의 일화 (사진 은 이정구의 석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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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가 명 재상의 식사초대 를 받아 방문했지만 하필 그 날 재상은 부재중이었다. >
재상의 가족들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먹을 술과 고기 안 주를 대 접했지만 >
이정구는 실컷 다 먹은 후 식전(밥을 먹기전)이라 이만 집에 돌아가 식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
그러자 놀란 재상의 가족들은 떡과 과일같은 음식 들을 내왔지만 >
내온 것 을 싹 비운 후 여전히 이정구는 식전이라 돌아가야한다고 했다. >
재상의 가족들은 오전에만 4~5번 계속 식사를 대 접했지만 >
이정구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밥을 먹어야겠다고 돌아가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
이정구 : 여기는 사람 밥도 안 주네 인심 팍팍하구나...
굶었으니 집에가 밥을 지어 먹는수밖에...
명재상의 가족들 : 쟤가 우리 식자재 다 털어먹었음ㅠ
명 재상은 "조선사람 은 정확히 밥을 먹지 않으면 굶었다 여기니 >
내 밥을 대 접하란 말을 잊어 사신의 대 접을 제대 로 못 했구나"라며 후회했다고 전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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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대 식가 중 단연 최고로 인정 받는사람 이 있는데
바로 홍일동 이다. 홍길동 아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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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 진관사에 방문하여 한 끼를 대 접 받는데 >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밥 세 그릇, 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고는 음식 이 부족하다며 >
진관사를 내려오는길에 찐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그릇, 회 한 쟁반, 술 마흔잔을 마셨고 >
그 소식 을 전해들은 세조가 >혀를 차 며 왜 그렇게까지 먹어대 냐고 탓했다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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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 저게 사람 새끼냐!!! (왕이 그냥 탓하셨다고 눈치껏 적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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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徐居正) 1487년 (성종 18) 간행된 《필원잡기》(筆苑雜記) 초간본 중 홍일동 에 대 한 기록
임진왜란과 정유유란 당시 선비 오희문이 9년 3개월간 피난길을 기록한 쇄미록에선 >
도망친 왜군의 밥그릇을 보니 조선인 밥그릇의 1/3크기였기에 >
그들이 오래 버티려 김치종지에 밥을 조금씩 덜어 먹었다고 생각했고 >
오히려 저걸 먹고 어찌 사람 이 살아가는건지 신기해 했다고 전해진다. >
하지만 왜군은 그냥 평소같이 먹은 것 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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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 와 김치종지에 밥을 먹고 사람 이 살아져? >
왜군 : 밥그릇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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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L 페트병 한병에 쌀을 가득 담아 먹는 수준 이다. >(지금 먹는 밥그릇의 5배) >
이여송 : "백성들 조차 이렇게 많이 먹으면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거냐" 라고 놀랬다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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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장수로 온 이여송이 남긴 기록 >
17C 일본 으로 가던 중 배가 난파되어 제주로 오게 된 하멜은 조선인을 >
"하얗고 웃음이 많으며 태어나 본 사람 들중 가장 대 식가들이다"라고 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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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C 중엽 실학자 이익은 류큐국(오키나와)사람 들이 조선 사람 들을 보고 >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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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우리나라 사람 들은 돈 이 조금만 생겨도 많은 밥을 먹으려든다"라고 한탄했다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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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선교사였던 다블뤼는 >
"많은 밥을 먹는것 에 대 해서 양반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 >
조선인들은 많이 먹는 것 을 큰 복으로 여긴다. >
큰 복숭아를 내오면 자제하는 사람 은 10개만 먹으며 >
많이 먹는 사람 은 50개도 먹었다. >
조선의 어머니 들은 자식의 배를 두들겨보며 확인 후 >
뱃속이 가득해지는 최후 까지 밥을 먹였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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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 배고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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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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