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한반도를 상징하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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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쪽구들'로 난방을 하던 것이 18세기부터 전국적으로 온돌이 보급되면서
극심한 민둥산이 양산되기 시작했음.
이익의 '성호사설'이 1760년에 나왔는데, 거기에 보면 100년 전만 해도
사대부 기와집같은 큰 집도 1칸, 2칸만 온돌이었는데 이제는 전국에서 전부 온돌을 쓴다고 나옴.
수도의 땔감 문제는 그보다 좀 더 빠른데
조선왕조실록에는 1681년부터 온돌이 점차 늘어서 궁궐에 나무를 공급하는 땔나무꾼들이
근처에서는 나무 못구해서 멀리서 구해와야 해서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고 대신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옴.
조선총독부가 조사할 무렵에는 이미 전국의 67%가 민둥산 (무립목지 + 치수발생지) 이었음
한반도 전체에 33%의 숲이 남아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험준한 곳 뿐이었음
현재 야산에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이 60년대부터 사람의 힘으로 심은 인공림들.
그 때문에 구한말 쯤 되면 이미 호랑이나 표범 수는 극히 줄어있었음.
아니 영조실록 까지만 올라가도 조선 남부 지방에는 남은 호랑이가 극히 적었음.
거기에 명줄 결정타를 날린게 해수구제 - 6.25 전쟁.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숲이 살아있었으니 많았겠지만 사실 1920년대 쯤 되면 표범, 호랑이는 거의 멸종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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