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염전노예’ 오빠의 첫마디… “니, 대학은 졸업했나”

컨텐츠 정보

본문

오빠는 서해안의 섬에서 부산 감전동까지 어떻게 왔을까?

“드라마,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건데요. 오빠 기억 속에 ‘우리 동네 감전동’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물어물어 부산서부터미널까지 왔다고 하더라구요. 거기서 또 감전동까지 걸어왔는데… 17년 만에 너무 많이 변했잖아요. 그래서 집을 못 찾았는데….”

그 순간 엄마의 지독한 교육이 오빠의 기억에서 빛을 발했다.

“어릴 적에 엄마가 오빠한테 만날 외우게 시켰거든요. 우리 집이랑, 앞집 구씨 아주머니 전호번호를요. 길 잃어버리면 집이나 구씨 아주머니에게 연락하라구요. 시간이 지나 우리 집 번호는 바뀌었는데, 구씨 아주머니 번호는 그대로였어요. 오빠는 그걸 정확히 외우고 있었고. 동네 근처에서 구씨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한 거예요. 자기 박종현이라고….”

오빠는 늘,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발달장애인 오빠에게 집과 감전동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남아 있었다. 섬에서도 염전주인에게 전화 좀 쓰게 해달라고 말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오빠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돌아온 오빠는 몸도 마음도 망가진 상태였다. 염전주가 찾아올까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릴 때처럼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물으면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이다. 동생 박수현은 오래도록 오빠에게 말을 걸어 기억을 끄집어내, 결국 염전주인을 알아냈다.

오빠 머리의 무수한 상처는 “염전주인에게 망치로 맞은” 결과였다. 절룩이는 다리 역시 고된 노동과 폭행의 결과였다. 동생은 오빠를 착취하고 때린 염전주인을 찾아내 법정에 세웠다.

그토록 오랜 인터뷰에도 오빠는 동생에게 먼저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유년의 그때처럼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오빠는 동생의 도움으로 지금은 부산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자립해 살고 있다. 복지관과 공무원의 도움도 받고 있다. 스마트폰도 개설했고, 은행에서 돈 찾는 법도 배웠다.

 

오빠가 먼저 전화를 건, 대화를 시도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놀란 동생은 전화를 받았다.

“수현아….”
“응… 오빠….”

드디어 오빠가 말을 걸었다. 동생의 가슴이 뛰었다.

“니… 대학은 졸업했나?”

17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오빠의 첫 질문이었다. 동생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집안이 몰락해 모든 가족이 돈을 벌던 1997년 그때, 오빠는 동생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던 것이다.

“응… 오빠 나 졸업했다. 졸업식 때 오빠 없어서 엄마, 아버지랑만 사진 찍었다.”
“다행이네…. 그게 항시 궁금했다. 네가 졸업 못했을까봐….”

동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소리 없이 울었다. 

 

전문

https://www.neosherlock.com/archives/18164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22,899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