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저 비서 그만두겠습니다."
컨텐츠 정보
- 471 조회
-
목록
본문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존재할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신분제가 사라진 21세기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상하관계를 나누고, 자신보다 윗사람을 질투하고 아랫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현대에는 법으로 나눠지는 신분대신 돈이나 권력,힘,나이,경력,인맥등이 노예와 주인을 만들었고, 같은 인간임에도 다르게 만들었다.
눈 앞에 앉아있는 차가운 인상의 아름다운 여자와 홀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사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듯이말이다.
송 비서.
네, 회장님.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사임하겠다는거지?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고향에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송 비서, 또 거짓말이군.
검은 머리에 정장을 입은 채 날 노려보는 이 젊은 여자는 이설아, 백색 그룹의 회장이자 이 나라의 제계서열 한 자릿대의 돈과 미모,능력과 권력 모두 갖춘 완벽한 보석같은 사람.
동시에 자신을 제외한 형제자매들을 모두 숙청하고 갓 성년이 된 해 회장직을 승계받은 독한 여자이기도 하다.
송 비서, 자네는 정확히 1년 3개월 15일전에 어머니 장례식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는데, 만약 지금이 사실이라면 그때 거짓말을 했다는거네?
또각
또각
이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걸어왔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나는 파플로스의 개처럼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대체 왜 나에게서 벗어나려는거지? 설마 여자생긴건 아니지? 나 그럼 못참는데
부담스럽습니다, 회장님이 절 아껴주시는 것도 잘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주변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항상 절 헐뜯고 시기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고, 회장님의 과한 은혜도 더이상 받기 거북합니다. 애초에 저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받든 말든 나는 사직서를 책상에 살포시 놓고, 회장실 밖을 나가려고 했다. 더 이상 이 공간에 남아있다면, 너무 늦어버릴 거 같았다.
여기서 나간다한들, 너가 뭘 할 수 있어? 힘도 인맥도 없는 널 사람들은 얕잡아 볼 뿐이야.
퇴직금으로 가게라도 차려보죠.
하지만 난 밖의 저 멍청이들과는 달라, 너라는 보석을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나뿐이고, 너를 원하는 것도 나뿐이고, 너가 있을 곳도 내 곁이야.
이설아가 뒤에서 안아주며 내 허리를 감쌌다. 평소에는 체통을 지키라며 한소리했겠지만, 지금은 입이 무슨 일인지 떨어지지 않았다.
가게를 차리고 싶댔지? 안그래도 식품계열 쪽 대머리가 맘에 안들었는데, 그새끼 내치고 널 그 자리에 앉혀줄게. 내 비서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조건하에말야.
그만하세요, 회장님
딱딱하게 굳어가던 혀를 억지로 굴려 단호하게 거절하였으나, 그녀는 아랑꼿하지않았다.
너를 알아보지 못하는 놈들은 어떻게 해줄까, 묻어버릴까? 아니지, 그런 멍청이들만 남겨야 내가 당신을 독차지할 수 있으려나?
내 허리를 감싸던 두 손을 팔로 뿌리친 후, 뒤도 안돌아보고 회장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이대로 나갈 생각이였다. 이설아의 입에서 나온 소리만 아니였으면.
우리 송 비서, 막내 여동생이 백색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치료가 힘든 희귀병이라고, 아직 초등학생이였지?
손잡이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저 여자는 내 목줄만이 아니라, 내 가족들의 목줄도 쥐고 있었다.
소송? 저 여자가 작정한다면, 대로변에서 칼 맞고 물고기밥이 되어도 기사 한 줄 안나갈거다.
지금 돌아오면 키스 한번으로 봐줄게.
어느새 나는 문에 몰아붙여진채 손가락으로 턱끝을 치겨올려지고 있었다.
이내 이설아의 촉촉하면서도 달콤한 입술에 내 입가가 적셔지고 있었다. 코 끝에 올라오는 싱그러운 샴푸와 향수향이 정신을 아찔하게 하고있었고, 회장실 유리 뒷편으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내 마음을 헤집어놓기 충분했다.
이설아와의 키스는 한두번이 아니지만, 항상 같은 맛이 났다.
처음은 목줄을 쥔 채 날 내려다보는 이설아에 대한 원망.
중간은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시키는대로 따를뿐인 나에 대한 혐오감.
마지막은 이 앞선 모든 잡념과 증오를 잊게 할 만큼의 끈적이고 탁하며 가장 순수한, 익숙해지는 그날이 두려워질정도의 쾌락.
언제부터 난 목줄을 차고 있었을까
어느날 갑자기 백석 그룹에서 무조건 입사 제안서가 올 때인지, 어쩌면 내가 그걸 수락하고 백석 그룹에서 이설아를 처음 만났을 때 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이설아라는 뱀을 내 몸을 칭칭 감싼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