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의 화학무기 참사와 치료제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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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바리  - 



2차  세계대전 이 한창이던 1943년  이탈리아 남부도시 바리의 항구는 연합군 함정으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남부로 진입한 연합군은 항구도시 바리에서 


전투에 필요한 보급품을 하역 하며 이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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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는 항구로서의 기능 은 좋았으나 


한가지 약점이 있었는 데 항공기에 대 한 방공망이 부실한 것 이었다




적에게 대 응할 주변 기지의 항공기 편제도 부족, 


지상의 대 공망도 제대 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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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943년  12월 2일 독일 공군은 연합군 함정으로 가득한 바리 항구에 대 한 공습을 감행한다


원래 목표가 아니었지만 정찰 이후 계획을 변경, 바리 항구를 성공적으로 기습하면


연합군의 진격을 늦출 수 있다고 판 단 루프트바페는 105대 의 항공기를 출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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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 당시 바리 항구의 연합군 함선들 - 



공습은 치명적이었다 제대 로 된 방공망이 없던 바리 항구는 독일 공군의 공습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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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중이던 연합군의 군함과 민간 선박들은 불덩이가 되며 사상자가 일어났고


연합군 뿐 아니라 바리 항구 주변에 있던 이탈리아 주민들까지도 공습에 휘말리는 상황 이 벌어진다



이 때 바리 항구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있었다


정박 중인 한 수송선에 치명적인 물건이 실려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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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 존 하비 수송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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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47A1 -


그 배의 함명은 SS 존 하비였고 그 안 에는 M47A1 폭탄 2000발이 실려있었다


M47A1은 겨자 가스라 불리는 화학무기가 충진된 일종의 화학탄이었고


(군대 에서 화생방 교육때 수포작용제라고 배우 는 그것 )


중량으로 100톤에 가까웠다



1차  대전 에서도 악명을 떨친 가스 중 하나이며 화학무기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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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  당시 겨자가스에 부상당한 영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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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000발의 폭탄은 연합군이 독일군이 유럽 전선에서 화학전을 할 경우 보복용으로 쓰기 위해 실어와 보관하고 있던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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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에 파괴된 존 하비 - 



결국 독일군의 공습에 존 하비마저 폭격당했고 폭발과 동 시에 안 에 있던 M47이 유폭되며 


연기에 섞여 그리고 바다에 유출된 기름과 섞여 퍼지기 시작 했다


(존 하비의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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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항의 연합군은 독일의 공습에 대 응하지 못 했고 


군함, 수송선 등 30척에 가까운 배들이 타격을 입고


수많은 인명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연기와 바다에 기름을 타고 퍼진 겨자 가스가  


남은 승무원들과 마을의 주민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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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 가스에 노출 된 캐나다 군인  - 


가스 성분에 노출 된 승무원들과 선원, 바리 항구의 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 했고, 부상병들과 함께 병원으로 후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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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 가스에 의해 생겨난 수포 - 



그러나 당시 병원의 의사들은 정보 부족으로 겨자 가스에 의한 피해를 제대 로 체크하지 못 했고


폭발 등의 부상자들 위주로 치료하느라 겨자 가스에 노출된 환자들의 상태는 악화되어갔다



 628명의 첫 노출환자가 증상을 보이며 괴로워했고


이후 노출된 이탈리아 주민들까지 병원으로 몰리며 상황 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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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어트 프랜시스 알렉산더 박사 -


상황 을 전달받은 연합군은 당시 아이젠하워 장군의 주치의 중 한 명이었던 


스튜어트 프랜시스 알렉산더 대 령을 이탈리아로 급파합니다



그는 의사이면서 메릴랜드의 육군 시설에서 화학무기 대 처 훈련도 받은 전문가였고 


병원의 환자들을 체크한 후 겨자 가스에 의한 중독임을 확인하고 의료진을 지도하며 치료를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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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어트의 바리 보고서 - 



그 덕분에 겨자 가스에 노출된 많은 인원이 목숨을 건졌고 치료 뿐 아니라 연구 자료와 샘플도 꾸준히 수집했다


이후 이 상황 에 대 한 보고서도 작성했고 이 자료들과 샘플들이 후에 큰 도움이 된다



(단 알렉산더의 보고서는 한동 안  사령부에서 기밀로 분류하고 공개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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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치료와는 별개로 미군은 이번 사건을 공개 하지 않았다


영국도 윈스턴 처칠의 명령으로 해당 사건의 서류를 소각, 은폐한다



바리 항에 2천 발의 화학탄을 연합군이 가지고 있었다는 소식 이 


독일로 들어갈 경우 그들을 자극해 벌어질 상황 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후 1944년  연합군 사령부는 이번 사태에 대 해 공식 발표하고, 화학무기 사용은 


보복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  이라는 확답을 내놓는 것 으로 마무리한다.


(미국 에선 1959년  이 사건에 대 한 자료의 기밀을 완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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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항구 사태의 정치적 행위와는 별개로


겨자 가스에 노출 된 사람 들을 조사하던 의사들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겨자 가스에 노출 된 사망한 이들은 골수가 손상을 받아 


백혈구 숫자 가 급속하게 떨어지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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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굿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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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길먼 -



당시 미국 에서 겨자가스 관련 연구를 하고 있던


예일대 학교 의 '루이스 굿맨' 과, '알프레드 길먼' 은 이 소식 을 듣고



이 겨자가스 (정확히는 질소 머스타드) 를 백혈병 치료제로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하게 된다


(1942년 에 관련 임상 실험 중이었으나 43년 에 바리 항구에서 얻은 데이터로 더 버프를 받음)




백혈구 숫자 를 줄여주는 특성을 살려 연구에 들어갔고 환자들에 대 한 임상 실험을 진행한다


그리고 임상 실험은 성공해 효능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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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949년  FDA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은 항암제인


'메클로레타민' 제품 명 머스타겐이 탄생한다


백혈병 뿐 아니라 림프종과, 혈액암 환자 등에게도 효능을 보이며 큰 도움을 줬다.



그 당시 걸리면 그냥 죽는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무서운 백혈병 환자들의 생존율을


올려준 약이며 화학무기로 쓰인 겨자가스를 응용해 사람 들을 살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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