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에 가장 가까웠던 한국 인 과학자 

컨텐츠 정보

본문

17286930581203.jpeg


 >
1931. 5. 4 출생, 1992. 5. 13 사망 >

강대 원 박사 >

이름을 들어본 사람 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영웅을 만들지 않으려는 우리사회와 관련이 있는 것 인지 아니면 한국  학계나 사회를 기웃거리면서 뭔가 얻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 을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가 Benjamin W. Lee (이휘소) 박사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태생으로 인류 역 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은 Dawon Kahng (강대 원) 박사일 것 이다. 왜냐면 강박사가 29살에 발명해서 32살에 특허를 얻은 MOSFET (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Transistor)은 현재  세상에서 돌아가는 모든 디지탈 회로의 기본이 되는 소자이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강박사의 발명이 없었더라면 현재 의 디지탈 소자들도 없을 것 이다. >

강박사는 1931년 에 한국 에서 태어나서 서울 대 를 졸업하고 미국 에서 1959년 에 오하이오 주립대학  전자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당시 최초의 트랜지스터 (Bipolar Junction Transistor)를 발명하여 가장 잘 나가는 연구소인 Bell 연구소에 취직한다. 곧이어 서른살도 되기 전에 인류 역 사를 바꾼 발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67년 에는 사람 들이 오늘 도 들고 다니는 USB 메모리와 MP3 플레이어 들어 있는 플레쉬 메모리 (non-volatile floating-gate memory)도 최초로 발명했다. 1988년 에는 일본  NEC가 미국  뉴저지의 프린스턴에 기초과학연구를 목적으로 세운 NEC Research Laboratory의 초대  소장을 역 임하고 1992년 에 사망했다. >

또 그는 미국  국부(國父)인 벤자민 프랭클린을 기리는 프랭클린연구소가 수여하는 스튜어트 발랜틴 메달과 오하이오 대학 의 탁월한 동 문상을 받기도 했다. 플랭클린 연구소의 메달은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이 수상할 정도로 미국  내 과학자들에게는 최고 영예로 인정받는 상이다. >
게다가 그는 2009년  미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www.invent.org)에 오르기도 하였다 >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31,501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